12/ 뭐가 달라도 다르더라
집 짓는 이야기 12
뭐가 달라도 다르더라.
부산에서 울산으로 가는길은 여러 길이 있었다.
노포동으로해서 언양을 거쳐 가는 길도 있고
해운대에서 내륙으로 가던가 바닷가로 따라 가는 길도 있었다.
박실장은 뭔일인지 울산을 몇번이나 들락날락하면서도 계약이 지지부진했다.
그는 홍대를 나와 윤씨농방에도 있었고 현대그룹에도 있었는데 경력이 능력을 대신하지는 않는것 같았다.
아무래도 가부간 결정을 내릴려면 이 넘이 직접 담당자를 만나 얘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아 차를 빌려 내려갔더니 그 때만해도 울산은 아직 허허벌판이나 다름이 없었다.
당시엔 박정희 대통령도 살아있었고 이 건희 회장의 부친인 이병철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직접 진두지휘하던 때였다.
삼성석유화학은 화학단지내에 있었는데 초창기라서 그런지 군데군데 허허벌판이 있었다.
지금은 상호가 삼성종합화학으로 바뀌었지만 당시엔 삼성석유화학이라고 불렀다.
삼성그룹의 공사담당자는 고 문구라는 친구였다.
지금껏 그곳에서 일했다면 아마 이사급은 충분히 되었을 나이인데,,,,,,,,, 그 이후로는 만나지 않아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암튼 그와 만나서 울 디자인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몇가지 디테일한 문제에서 입장차이가 있다고 하였다.
해서 그의 얘기를 들어봤더니 기술적인 문제엔 전혀 문제가 없고 여닫이 문앞에 새길 삼성 마크 크기를 가지고 두 사람이 한바탕 서로 고집을 부린 모양이었다.
원래 디자이너라는 사람들은 자기 작품이나 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보니 의외로 자기 고집이 센편이었다.
때문에 왠만해서는 남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경우는 담당자의 판단이 적확했다.
박실장이 그려간 도면은 문의 크기에 비해 삼성 마크가 너무 컸다.
해서 비례에 맞도록 다시 도면 수정을 해주었더니 며칠 후 계약을 하자고 연락을 하였다.
한데 약속한 날짜가 되었는데도 저쪽에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약간 기분이 상했지만 일단 약속을 한 것도 저쪽이고 가부간 전화로 알려주겠다고 한 것도 저쪽이니 하루만 더 기다려보자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만 하루가 지나자 그제서야 저쪽에서 전화를 했다.
담당자는 약속을 어긴 이유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다만 다음날 급히 내려오라고만 하였다.
계약을 하고 일을 서둘러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은 내가 일부러 내려가지 않았다.
이쪽에서 네댓번 내려갔으면 됐지 그쪽에서도 좀 기다려봐라 하고 역부러 늑장을 부렸더니 담당자가 애가 타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땐 인테리어 회사를 한답시고 있는돈 없는 돈 다 끌어들여 사업을 막 벌리던 참이었는데
교회공사를 끝내고 나니 두번째 공사수주가 바로 삼성계열회사인 삼성석유화학 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어쩌면 천운 같았다.
실력이나 능력이 미천한 이 넘에게 이 나라 굴지의 회사가 인테리어 공사를 맡기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운이 좋았다해야 옳을 것 같았다.
물론 당시엔 인테리어 회사가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덕도 톡톡히 봤겠지만 하여튼 울산 온산공단은 말만 들었지 초행길이다보니 모든게 낯설고 일하기도 무척 불편했다.
특히 삼성석유화학은 당시 초창기여서 그런지 다른데보다 더 분주해 보였다.
공장에 대해서는 지금도 아는게 별로 없지만 얼핏 듣기로는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쓰는 대부분의 기초화학원료를 일본에서 수입해 썼는데 그걸 삼성에서 직접 만들려고 공장을 지은 모양이었다.
그러다보니 국가경제와도 상당히 관련이 있었던지 VIP들을 위한 브리핑 룸이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한데 담당자는 견적서를 보자마자 합판이 몇장이 들어가느냐 못이 몇개 들어가느냐하고 따지기 시작했다.
해서 그런식으로 따지려면 일을 맡을 수가 없다고 했더니 왜 그러냐고 그가 도리어 반신반의 했다.
그래서 이게 어디 공장에서 찍어내는 나사못인줄 아느냐...............하고 물었더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견적서는 이만한 공사를 하려면 적어도 이런 자재와 인건비가 든다는거지 정확하게 못이 몇개 들어가고 아니고는 그리 중요한게 아니라고 하였다.
그건 마치 조각가더러 왜 그리 큰 나무를 사와서 다 쪼아 내버리냐고 묻는거나 진배없다고 하였더니
그제서야 어느정도 수긍이 가는지 그 다음부터는 더 이상 따지지를 않았다.
암튼 삼성의 일은 여러모로 내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특별히 감시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은데도 정말 열심히들 일하는것 같았다.
특히 공사를 하는 동안에도 담당자외에는 어느 누구도 간섭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건 그만큼 확실하게 한 사람에게 책임도 지웠지만 상하가 서로 인격을 존중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객지 밥 먹어가면서 노가다들과 어울려 한달여만에 공사를 마무리 하자 부장을 비롯하여 몇몇 간부들이 와 한참동안 둘러보고는 잘되었다 하고는 그냥 나가버렸다.
완공검사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검사가 끝나자 마자 담당자가 경리부에서 바로 현금으로 결제를 해주도록 조치를 취해주었다.
공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병철 회장을 위시해서 신현확 국무총리등 울나라의 기라성 같은 경제인들이 거기에 모인 모양이었는데 당시 그 곳에 간 LG쪽 고위층 인사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저 공사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LG(당시는 럭키 울산 공장이었다) 울산공장 쇼룸도 한번 만들어 보라고 지시는 한 모양이었다.
어느날 아침 누군가 찾아왔는데 명함을 보니 그가 바로 럭키 울산 공장 이홍 과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