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바보 함양

커피앤레인 2011. 8. 2. 18:26

 

김 충순作

40415

바보 함양

 

 

 

 

경호강을 따라 한참을 더 달리면 산청 휴게소가 나왔고

거기서 얼마 가지 않아 지리산 갈랫길이 나왔다.

민족의 영산이라는 지리산은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곳곳이 명소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역사와 올곧은 인물들의 얼과 자취가

수백년동안 한데 어우러져 문화 예술을 탄생시킨 곳이 함양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본 곳 중 일두 정여창 선생 고택 외에는

그 어느 곳 하나 반듯하거나 깔끔한데가 전혀  없었다.

 

 

그나마 우명리 정씨 고택은 토목을 전공한 후손이 살고 있어서 그런지 

그런대로 잘 정비가 되어 있었지만 

그 곳도 일손이 달리는지 풀이 무성했고

그마저도 문화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서양식 집이 

코 앞에 떠억 버티고 서 있어

설계를 한 자나 그것을 짓도록 허가한 군청이나 문화재에 대한 무식하긴

여전했다.

 

그 보다

더 가관인 것은 남계서원과 청계서원이 자리 잡은

그 바로 건너편에 현대식 양계공장을 보면서

저절로 장탄식이 나왔는데

이러고도 함양이 문화 예술이 숨쉬고 충과 예의 고을이라고 떠든다면

그야말로 이건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예로 부터 우리나라는 홍살문이란 독특한 문이 있었는데

이 홍살문은 대문 앞 얼마쯤 거리에 높게 새워 누구나 다 볼 수 있게 하였다.

이 문은 사대부라하여 아무나 새울 수 있는 그런 문이 아니었다.

서원(학문을 배우는 강당과 학생들이 기거할 수 있는 동재 /서재가 있었다. 서원 뒷편 높은 곳엔 선현들을 모신 사당이  있었다)과 나라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 집 앞에 새웠는데 홍살문을 세운 이유는

이곳이 거룩한 곳이라하여 특별히 구별하여 만든 것이었다.

 

 

때문에 홍살문 앞에는 반드시  하마비(下馬碑)라는게 있었다.

하마비는 이곳부터는 아무리 높은 벼슬아치라도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일종의 말없는 명령이었다.

해서 이곳을 출입하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의관을 제대로 갖춘 뒤  스스로 걸어서 집 안으로 출입하게 하였는데

이는 서원에 모신 선현들에게 예를 표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한데  함양이란 곳은 도대체 누가 살기에 자기 고향의 선현들의 얼과 기개와 사화에 얽힌 숱한 고난과 역경과 역사를  제대로 인식이나 하고 있는걸까?

 

 

 

문화재 옆에 떠억 버티고 있는 저 양계장은 뭐며

고택과 맞붙어 있는 저 신식건물은 또 무슨 앙상블인가?

(세계 어느나라가 문화재 주위를 이렇게 관리하며

이 나라 어느 고을이 이렇게 무식한 짓을 하면서도

양반동네입네할까?)

 

 

하기사,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상림 곁에 한창 마무리 공사가 진행중인

문화센터인지 문화회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과연 이것이 누구의 작품인지 그게 참 궁금하였다.

 

 

지금 이 디자인이

어떻게 함양이란 옛고을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지

이 넘의 머리로는 아무리 돌리고 돌려도 이해가 잘 않되었는데

원래 둔재라 그건 그렇다치더라도

무식한 이 넘의 눈에는 현대식 건물이라고 하기엔 디자인이 너무 난삽하고  

내리 누르는듯한  겉치장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트레쓰를 받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 정도로

너무 무지막 하고 투박했다.

 

 

더구나 다 털어도 불과 인구 50만명도 채 될뚱말뚱하는 그런  작은 읍내에 

어떻게 그렇게 큰 건물을 세워야 했는지 그것도 참 아리쏭 했다.

더 웃기는 것은 몸집을 조금만 더 크게 보이면 함양군이 갑자기 더 커지는걸까?

아니면 좀 더 현대적인 세련미를 더하려고

궁리를 하다 끝내 저지른 뼈아픈 실수일까?

암튼 유리로 만든 가벽은 정말 가관이었다.

정면에서 보면 그래도 뭔가 그럴 듯 해보였는데

측면에서 보면 이건 거의 사기에 가까운 어설픔 그 자체였다.

 

 

해서, 건축가는 가벽을 지탱하기 위하여

마치 막대기 하나를 달랑 받쳐 놓듯이 

그렇게 H빔을 길게 설치했나본데 

차라리 그 넓은 땅을 자연 그대로 그냥 내버려뒀으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더 나은 후손들이 더 아름다운 건축물을 새울 때 까지 말이다.)

 

폭우가 쏱아지는 저녁 내내

2박3일간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부산으로 되돌아오는 도중에도  

마치 목구멍에 박힌 가시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듯이

함양이란 천혜의 고장이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할 수가 없었다.

 

 

해서 옛 어른들이 그랬나보다.

배운 바가 없으면 본 바라도 있어야 한다고 .........................

그에 비하면 거창은 수승대를 제외하곤 함양만큼 천혜의 자연도

역사의 흔적도 그리 월등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문화회관 하나만큼은

아무리 안목이 없는  길손이라도

아 예쁘네!너무 여유로와서 좋다 ...................... 모 그런 소리

하나쯤은 들을 것 같은데

함양은 왜 새(혀)가 빠지도록 일하고도 욕만 얻어먹지.. 

 

 

암튼 폐일언하고,

제발이지, 함양 공무원님들이시여!

그 좋은 상림 숲속에다 딴따라 패들만 매년 불러다가

몇날 며칠 군민 위로 잔치한답시고 없는 돈 있는 돈 다 끌어다가

노래 부르고 술판만 벌일게 아니라

 

상림을 위시하여 좌우 백천/ 칠선계곡/마천/대강재와 함께 남계서원/청계서원/묵계서원/우명리 정씨 고택/지곡 정여창 선생 고택/ 풍천 노씨 고택/ 한옥마을/용추계곡 심원정/농월정과 서하의 논개 무덤까지 두루 정비하여  무진 참빛 미술관과 같은 현대 예술가와 함께 어우러진 함양만의 문화 예술 투어를 기획하면

옛 선현들을 욕되게 하지도 않고 돈도 벌고 고을 이름 값도 톡톡히 할텐데...............................그렇게 인재가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