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그림/ 서양화가 오 세효作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야고보 선생은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교회는 캐토릭과 차별화 한답시고
오직 믿음으로 ..........................만이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말씀을
지나치게 강조 하다보니
이젠 그 누구도 그리스도안에서의 행함을
그리 대수롭지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소자중 하나에게 내 이름으로 물 한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코 그 상을 잃지 않으리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예수님은 행함을 더 중히 여긴걸까 아니면 믿음을 더 중히 여긴걸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예수님의 마음엔
믿음은 곧 행함에서 나타나며 행함은 믿음 위에서 비로소 이루어진다는다 걸
말하고 싶었나본데
왜 우리는 여전히 그 경계선을 허물지 못한체
여전히 진리에 눈먼 자처럼 그토록 방황하는 것일까
해서 꼭 그런건 아니겠지만
나는 오늘도 버려진 고양이 세식구를 위하여
고양이 밥을 사러갔는데 ..............................................
소자에게 물 한그릇을 줘도 상을 준다 하신 주님께서
유기된 고양이 일가족을 먹여살렸는데
설마 상을 안줄까.
언필칭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혼은 있으되 영이 없는 고양이이라도 생명은 생명이니
그래도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고 ....................상을 주신다면
난 그 복을 오데다 다 쓰지?
어차피 이래도 쪽박이고 저래도 쪽박이면
남은 시간 차라리 연금복권에라도 함 투자해볼까?
20년간 매월 500만원인가 얼만가 준다하던데
만에 하나 소 발에 쥐잡기로 그 돈 내준다면
난 또 뭐하며 살고 있을까?
여전히 고양이 밥준다며 궁상을 떨며 아침저녁으로
부처님께 공양하듯이 그렇게 공양을 할까?
아니면 부으라 마시라 하면서
예쁜 뇨자 궁뎅이 쫓아다니느라 한동안 정신없이 돌아다닐까?
어쩌면 난 없는게 더 복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