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본체에 이상이 생겼나보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다고 괴로움을 호소했다.
그래도 참 고마운 것은 40년이 넘도록 잔병 하나 치르지않고 용케도 잘 살아온 것 같았다.
모두 모두 하나님의 은총이었다.
김감독님 부인은 마지막 2개월동안 몹씨 힘들었나보다.
처음엔 가벼운 대상포진 정도로만 알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했나보다.
병상에서 한번 이 놈의 이름을 부르며 지난 날의 추억을 기억하셨나본데 ㅡ
천주교 중앙성당 영안실은 보기보다 더 고요하고 조용했다.
늦은 시간까지 많은 사람들이 문상을 했다.
송재 이상개 시인.안기태화백.신태범 소설가.최화수원로기자.동의대 영상영화과 교수들과 독립영화 강지훈감독.권태원시인도 자리를 함께했다.
부산시장을 대신하여 문화관광국장도 왔고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집행위원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인 배우 강수연은 조화를 보내왔다.
문상은 전날에 이어 다음 날 밤12시까지 이어졌다.
장지는 천주교 공원묘지 양산 하늘공원이라고했다.
장례미사는 그 다음날 아침 10시에 열렸다.
다소 날씨가 쌀쌀한 것 같아 검은색 트렌치코트를 걸치고나왔는데 아무리 바빠도 오늘만큼은 장지까지 동행하기로 결심했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도 전송하고 싶었고 이제 혼자 남은 노감독님의 마음도 위로할 겸 ㅡ서둘러 길을 나섰다.
장례미사는 1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거의 300명 가까운 조문객이 미사에 참석했다.
미사가 끝나자 운구는 영락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2시간 정도 화장을 한 다음 유골을 수습한 뒤 양산
하늘공원으로 향했다. 장지는 드넓었고
납골당의 오후는 생각보다 더 조용했다.
창틈으로 봄볕이 쏱아져서 그런지 납골당이라기 보다 마치 작은 아파트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교회나 성당이 참 좋은건 교우들이 떠나는 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보듬어 주려는 애틋함 때문인지 자주 찬송가를
불렀다.그런 때문일까?
안장을 끝내고 돌아서는데 내 눈가에도 어느듯 눈물이 고였다.
순간 즐겨 부르는 찬송가 한 구절이 오래간만에 생각났다.
우리 다시 만나 볼 동안 하나님이 함께 계서
훈계로서 인도하며 도와주시기를 바라네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때까지 계심바라네
삼가 고인의 명복을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