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이 춤을 추며 하늘을 올라갔다고 하여 승학산이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승학산은 억새풀로 유명했다.
승학산으로 오르는 길은 여러갈래였다.
하단 전철역에서 출발하여 동아대학교 뒷편으로 오르는 길도 있었고 주례 동의대학교를 끼고 임도를 따라 오르는 길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길을 잡으려면 중구와 동구 사이에 우뚝솟은 현충탑이 있는 민주공원 시내버스 터미널에서 산길을 잡는게 가장 이상적인 트래킹 코스였다.
충혼탑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100m 정도 걸으면 구덕산 꽃마을로 가는 산길이 길손을 반겼다.
이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배드민트 동호인들이 즐겨찾는 미니 체육공원이 나왔다.
그 곳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왼쪽으로 난 샛길을 따를건지 직진을 할 것인지 결정을 해야했다.
샛길은 대체로 완만했다.
경치도 아름답고 코스도 별반 나무랄때가 없었다.
하지만 산행은 너무 밋밋하면 재미가 없었다.
약간 가파르긴 하지만 직진을 하면 가다가다 아름다운 부산항이 새악씨처럼 볼을 붉히며 자태를 뽑내었다.
500m정도 오르면 고생했다며 구봉산 봉수대가 가슴을 내밀었다.
지형적으로 봐 다대포 응봉봉수대가 제1호 봉수대라면 구봉봉수대는 제 2호 봉수대임에 틀림없었다.
봉수대란 외적이 침입하거나 급박한 일이 발생했을 때 낮에는 연기를 올리고 밤에는 불을 피워 위급한 상황을 한양까지 실시간 알리는 그런 신호체계였다.
때문에 낮에는 짐승의 똥을 태워 연기를 피웠고 밤에는 나무를 지펴 불기둥을 볼 수 있게하였다고 하였다.
아무튼 구봉봉수대에서 잠시 숨을 돌린 다음 길을 재촉하면 이내 구봉체육공원이 나왔고 거기서 직진을 하면 구봉산 정상을 거쳐 엄광산에 이르렀지만 왼쪽으로 빠지면 구덕산 체육공원으로 가는 임도가 나왔고 오른쪽으로 빠지면 동구청쪽으로 가는 산책길이 사람을 유혹했다.
하지만 양반은 아무리 추워도 곁불은 쬐지 않는다했거늘 어찌 비겁하게 샛길을 택하랴.
하여 직진을 계속하면 해발 431m를 알리는 구봉산정상이 앞을 떠억 가로막았다.
알다시피 해발이란 인천 앞바다를 기준한 높이였다.
인천 앞바다는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했다.
때문에
바닷물이 가득 찼을 때와 빠져나갔을 때의 중간지점을 택하여 기준점을 잡고 산높이를 정했다.
아무튼 그건그렇고 거기서 다시 길을 재촉하면 한참을 내리막길을 신나게 걷다가 다소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나야했다.
모든게 그렇지만 삶이란게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었다.
산행이 즐거운건 인생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 정상에 이르면 부산정경이 한 눈에 다 들어왔다.
멀리 광안대교는 물론이고 황령산과 장백산이 눈앞에 펼쳐졌고 부산항대교와 영도고갈산과 남항대교가 그림처럼 눈을 즐겁게했다.
하지만 그 곳은 엄광산 정상은 아니었다.
200m쯤 산길을 따라 걸어가면 엄광산 정상이라는 표지석이 나왔고 잠시 숨이라도 고르라고 아름다운 정자가 베시시 웃으며 사람을 유혹했다.
거기서부터는 내리막길이었다.
얼마동안 길을 걷다보면 편백숲이 나왔고
편백숲을 지나면 왼쪽엔 내원정사가 있었고 눈앞엔 꽃마을이 펼쳐졌다.
오래전에 꽃을 많이 길렀다고 하여 꽃마을이라 불렀는데
그 전통은 지금도 이어져 내려왔다.
꽃마을은 대표적인 먹거리 천국이었다.
해서 이곳에서 시장끼를 못챙기면 더는 먹을 곳이 없었다.
잠이순두부집은 시락국과 손두부가 일품이었다.
그외에도 내가 잘가는 옹기골도 있었고 순옥이네도 있었다.
거기서 어느 정도 허기를 채웠으면 산길을 재촉하여 구덕산문화공원 쪽으로 길을 잡으면 색다른 볼거리들이 사람을 붙잡았다.
하지만 아직은 끝이 아니었다.
억새풀이 장관인 승학산을 가려면 한참을 더 올라가야했다.
승학산 억새풀은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노을이 질 때면 낙동강은 억새풀과 함께 옛사랑의 희미한 그림자처럼 사람의 마음을 심란하게했다.
승학산에 이르러 다시 가파른 내리막길을 잡으면 동아대학교 하단캠퍼스가 나왔고 마침내 하단오거리가 사람들을 반겼다.
산행의 끝은 뭐니뭐니해도 한 잔 술을 나누며 얼마간의 허기를 채을때가 가장 행복했다.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산행시간은 족히 4ㅡ5시간은 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