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유 선경作
석대를 가다
꽃나무를 제대로 살려면 노포동이나 석대를 가야했다.
노포동은 1호선 마지막 종점이었고 석대는 4호선을 타고
한참을 가다보면 한가한 들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그 근처 넓은 땅은 거의 풍산금속 소유이었다.
풍산금속은 알다시피 군수품 공장으로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총알 대부분이 이 회사 제품이었다.
해서,
뇨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남자들은 일단 군대에 갔다온 사람이라면
총알에 대하여 누구나 남다른 애증이 교차하였다.
왜냐하면 군인은 뭐니뭐니 해도 총을 잘 쏘아야하기 때문인데
6주간의 신병 교육중 가장 혹독한 기합을 피하려면 일단
사격점수를 합격하여야 하였는데
훈련병 시절엔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쉽진 않았다.
다행이 이 넘은 총 쏘는걸 무척 좋아해서 기합은 용케도 피했지만
암튼 탄피를 모아야 할 땐 한 자리서 100발 이상도 쏘아보았다.
때문에
젊은 날의 이런저런 사연 때문인지 풍산금속이라는 말만 들어도
온갖 총알들이 내 눈앞에서 어른거렸지만
오늘은 총알 대신 꽃나무를 사러 온 탓에
일찌감치 농수산물 센타 쪽으로 발을 돌렸는데
가을이라 그런지 노란 국화/ 빨간 국화/ 보라색 국화가
저마다 주인을 기다리며 한가로이 길가에 쭈그리고 앉은 채
가을바람을 맞이 하고 있었다.
해서,
사람이나 짐승이나 꽃이 아무리 예쁘다 해도
제 주인이 없으면 외롭긴 마찬가지인갑다 하고
굳이 돈들여가며 사지 않아도 될
물 칸나며 아스타며 하와이 무궁화를 흥정하다
끝내 하와이 무궁화 두 그루만 달랑 사 들고 왔는데
어쩌면 저 놈들은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제 주인을 기다리다
그렇게 지친 채 시들어 버리는건 아닌지.
오늘따라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이 못내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이 나이에도 가을을 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