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를 걷는 여자 / 17
written by j.i.woo
이혼을 결심하자 여잔 처음으로 혼자라는게 절실히 닥아왔다.
주변의 시선도 버거웠지만 솔직히 말해 창피함에 견딜수가 없었다.
다들 눈치를 살피느라 쉬쉬했지만 그가 없을 땐 온갖 얘기들이 다 쏱아져나올게 뻔했다.
-왠만하면 참지.
-그러게 말이야.
-성질이 더러워서 더 그럴거야.
-누구는 다들 좋아서 사는 줄 아나보지?
-자식 놓고 살다보면 다 그게그거야.
-바람 안피우는 남자가 어디있어. 그냥 모른척 덮어두는 거지.
-요즘은 여자가 더 한다 하더라.
-피장파장이지 뭐.
여잔 60이 되어서 비로소 엄만 바다가 되었다는 연극을 기억했다.
차라리 모든걸 삼킬 수 있는 바다였으면 더 좋았을건데......
여자는 바다가 되지 못한걸 처음으로 후회했다.
어쩌면 여잔 바람이고 싶은지도 모른다.
여잔 비로소 바람을 기억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바람처럼 그렇게 살다 미련없이 갈 수만 있다면
더 이상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텐데......하고 황량한 들판을 혼자서 걷고 또 걸었다.
여잔 지지리도 고생만 하다 죽은 친정엄마를 기억했다.
빨래비누 하나라도 아끼려고 궁상을 떨던 엄마가 때론 안쓰럽기조차했다.
-엄마 그렇게 살지마. 그렇게 아껴서 뭐할 건데.
-뭐하긴. 아껴야 잘 산다.
-잘 사는게 고작 이거야.
-이 가스나가 못하는 말이 없네. 밥은 누가 공짜로 먹여주나?
-안 먹으면 되지.
-아이고. 저런 철없는 년을 봐라. 너도 시집가봐라. 모든게 다 아깝지.
-난 그렇게는 안살거야. 그렇게 살바엔 차라리 죽는게 낫지.
-보자보자하니 못하는 말이 없네. 이 년이.
엄마의 일생은 그랬다.
말년엔 췌장암까지 겹치면서 누구 하나 엄마를 가까이 모시고 살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노인병동으로 모셔야한다고 고집했지만 엄만 죽어도 집에서 죽겠다고 악을 바락바락 썼다.
여잔 그런 엄마를 위해 자주 먼 길을 오르내려야했다.
그녀가 시외버스를 타는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버스가 지나갈 때 마다 친정엄마는 아픈 몸도 마다하고 하루종일 바깥에 나와 딸이 오길 기다렸다.
-오늘 우리 딸이 오는 날이여 ,,,,,,,,,하고 자주 자랑을 했다.
아마도 오랜 세월동안 읍내를 오가며 딸하고 다닌 추억을 엄만 잊지 못했나보다.
때문에 여자는 불편해도 시외버스를 고집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마음이 시리고 아팠다.
엄만 스스로 병을 이길려고 무진 노력했다.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도 전혀 놀라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냥 자기 몸에 어딘가에 종기가 생긴것으로 치부했다.
때문에 죽는 날까지 평소와 다름없이 밭에나가 풀을 매기도 하고 꽃을 가꾸기도 했다.
하지만 기력은 어쩔 수 없었다.
점점 체력이 딸리면서 고통이 심해지자 노인네는 자주 자리에 누웠다.
여잔 그게 늘 가슴 아팠다.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고 그저 멍하니 바라만 봐야 자신이 너무 초라했다.
거기에 비하면 이혼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한건지 여잔 엄마를 통하여 깨달았다.
-아씨 ....아무래도 어머니가 이상해요.
손위 동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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