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매일 그네를 타는 남자

그네를 타는 남자 6

커피앤레인 2008. 5. 9. 17:14

 

그네를 타는 남자/ 6

 

 

 

 

-그런데 말이야. 그 여자하고는 왜 헤어졌어?

-그냥 그렇게 되었어.

-누가 찼어?

-차고 자시고 할 게 뭐있어.

- 여자가 헤어지자고 했어?

-묻지마. 생각하기도 싫어.

-너 상처를 단단히 받았구나. 그게 사랑이야.

 사랑이 밥 안먹여준다 했잖아.

  자고로 사랑은 믿을게 못돼.

 

사내는 벌써 취했나보다.

-나 전화 해볼까?

-누구한테 ?

-누군 누구야. 그 여자지.

-미쳤어. 전화하게.

-가는 이유라도 알아야할 게 아니야.

-그런게 사랑이라며.

  가고 싶을 때 가고 오고 싶을 때 오는 그런게 사랑이라며.

  근데 굳이 따져서 뭣해

-그건 그렇지.

  우리 어디가서 한 잔 더하자.

  오늘 기분 딥다 더럽네.

-됐어. 그만해

 지금도 충분해.

 

 

남자의 집은 초장동 산 69-7번지에 있었다.

사람들은 달동네라고 불렀지만 그에겐 이만한 집도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소나기라도 쏱아지면 옥상 위에 늘어놓은 빨래들을 서로 걷어줄 정도로 살가운 동네였다. 

하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살가운건지 살갑기 때문에 가난한건지는 남자도 알지 못했다. 

종종 친구들이 

-너 아직도 거기 사냐 ...................?

하고  종종 비아냥 거리듯 말했지만 남잔 전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남잔 이곳이 오히려 자랑스럽기조차했다.

하늘이 가까워 별이 더 또렸했고 부산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만에 하나 6.25때 그의 아버지가 이곳까지 쫓겨오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이만한 위치를 찾기도 그리 쉽진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날이 갠 날은 멀리 영도다리를 좌우로 용두산과 고갈산을 바다가 갈랐고

안개가 많이 낀 날은 섬은 아예 통째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곤했다.

어렸을 땐 집창촌을 따라 산길로 올라가는게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집창촌 여자들도 그와 같은 동네에서 숨을 쉬고 사는 이웃에 불과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을 때도 제일 기뻐한 사람도 이들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낮엔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야 화장을 하고 윈도우 안에 모여있었다.

간혹 늙은 창녀 혼자서 마루에 나와 담배를 뻐금뻐금 피워대며

-작가님이 쓴 글 요즘 잘 보고 있어요.하고 아는체를 했다.

하지만 이 바닥도 거의 종착역에 다다랐나보다.

한 집 건너 문을 닫더니 이젠 빈 집이 더 많았다.

한때는 길고양이들도 통실통실했는데 녀석들도 마땅히 갈 곳이 없는지 

삼삼오오 웅크리고 앉아 이쪽을 잔뜩 노려보고 있었다.

어쩌면 산다는건 짐승이나 인간이나 힘들긴 매일반이었다.

취한김에 남잔 일부러 고양이 앞으로 한발 더 다가갔지만

녀석들은 눈만 말뚱말뚱한 채 좀처럼 꼼작도 하지 않았다.

낯이 익은걸까. 아니면 더 이상 잃을 것도 두려울 것도 없기 때문일까.

남잔 비로소 후회했다.

네가 나였더라면 너는 과연 어떻게 했을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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