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경 작 / 겨울산
겨울/겨울 산/겨울 여자
겨울은 시리다는 느낌부터 먼저 다가왔다.
해서 방문을 열기가 무섭게
찬바람이 한순간 방안의 온기를 냉큼 앗아갔지만
그래도 겨울은 진눈깨비가 있어서 좋았다.
우중충한 날씬 진눈깨비 내리기에 딱 안성마춤인 모양인지
이 넘은 나보다 훨씬 더 앞서
저 허허벌판을 달려가며 춤을 췄다.
오늘따라 무슨 내림굿이라도 하려는걸까?
하긴 이생에서 못다푼 한을 하늘인들 어쩌지는 못하리라
그나마 사랑이라도 해본 자는 덜 외롭겠지......
겨울산을 오르는 자는 산등성이를 오르며
양켠에 펼쳐진 전혀 다른 얼굴에 무감각해진지
너무 오래되었나보다.
그들은 애써 응달진 곳을 외면했다.
오로지 눈앞에 펼치진 정상만 산이라 믿는지
지팡이를 곧장 고추세우고 또 가픈 숨을 내몰아 쉬었다.
하지만 이때쯤이면 삿뽀르엔 눈이 올게 뻔했다.
삿뽀르의 눈은 유달시리 억척스러운데가 있었다.
밤새 내리고도 또 내렸다.
오겡끼 데스까 (안녕하세요)
하이 겡끼데스(네 안녕합니다)/ 교와 사무이 데스네 (오늘은 춥군요)
혼또다여 (정말 그렇네요)
니홍고(일본말)와 강고꾸고( 한국말)가 엉키면서
료낀(일본여관)의 아침은
그 어느때보다 더 맑고 더 깨끗했다.
고찌소 사마 데시따
여잔 올만에 메시지를 남겼다.
그새 무슨 바쁜일이 많았나보다,
(하긴 이쁜여잔 늘 바쁘겠지........................)
해서 이 겨울이 더 아름다운걸까.
여잔 센스가 남달랐다.
그래서 그런지 옷을 잘 입었다.
나는 그런 여자를 무척 좋아했다.
마치 이른 새벽에 일어나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 처럼
여잔 늘 사람을 여유롭게 했다.
전혀 천박하지 않으면서 전혀 까탈스럽지도 않았다.
하지만 겨울만큼 붉은 색이 썩 잘 어울리는 계절도 없었다.
긴 바바리 코트속에 감추어진 블랙슈트위로 살짝 내비친
레드스카프는 여자만큼이나 사람의 마음을 끌었다.
해서 겨울이 오면
사람들은 또 외로운 방황을 서두르는지
겨울 일요일 아침은 늘 한산했다.
해서 이겨울만이라도
눈이 한바탕 펑펑 쏱아졌으면 좋겠구만 .............
눈이 오기엔 너무 이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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