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아침에 쓰는 일기 439 / 태종대

커피앤레인 2007. 7. 3.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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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

 

 

 

자갈치 시장을 지나 영도다리를 건너면 크고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텃세가 심한 탓인지

아직도 뭔가 모르게 육지와는 다른 것들이 조금씩 피부로 와 닿았다.

원래 태종대로 가는 길은 두 갈래였다.

남항동에서 우측을 가는 길과 좌측으로 가는 길이 바로 그 길이었다.

우측으로 틀면 절경을 따라 목장원으로 가는 길인데

드라이브를 하려면 이 길이 제일 아름다웠다.

반대로 좌측으로 한진중공업 쪽으로 틀면 큰 배들이 보이고 멀리 오륙도가 보였다.

 

하지만 두 길은 동삼중리에서 다시 마주쳐 태종대입구에 함께 들어갔다.

태종대 입구에 가면 연대본부가 있었고 자갈마당이 있었다.

연대본부 입구엔 이 넘이 지어준 교회가 있었다.

이른바 군인교회이었다. 그곳을 지나칠때마다 늘 애착이 갔다.

하지만 그때 같이 땀흘렸던 연대장도 군목도 정보장교도 이젠 다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거기서 자갈마당으로 내려가면

해삼 /멍기/개불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장관을 이루었다.

자갈마당을 따라가면 태종대에서는 볼 수없는 또 다른 산책코스가 나오는데

산허리를 돌아 가는 길은 황톳길이다. 경치도 경치지만 그렇게 정겨울수가 없었다.

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려면 이곳만큼 좋은 곳도 그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을 걸으려면 적어도 1시간 이상을 걸을 각오를 해야하였다.

느긋하게 시간을 낼 수없는 나그네는 마음만 급했지 그렇게 한가하게 산책을 할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 길은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걷기엔 딱 안성마춤인 코스였다.

간혹 모통이를 돌면서 뜨겁게 입을 맞추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만큼

호젓하면서도 인적이 아주 드문 곳이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시간이 없으면 어쩔 수가 없는법,,,,,,,,,,,,,,,,,,,,,,,,,,,,,,,,,,,,,,,,,,,이다.

그러면 차라리 태종대 공원안으로 그냥 들어가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이게 더  훨 실속이 있을게다.

공원안으로 들어가면 다누비라는 관광열차가 사람을 실어날랐다. 이른바 태종대 일주 코스였다.

성인이 1500원이니 그리 비싼편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태종대는 뭐니뭐니해도 걷는 것 이상 매력은 없었다.

한참을 걷다보면 등대가 나오고 전망대가 나오는데

등대는 길 저 아래쪽에 있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은 귀찮아서도 그냥 지나쳐버렸다.

하지만 태종대 까지와서 태종대 등대를 안보고 가면 촌 놈 장에 갔다온 만큼이나 실속도

남는 것도 없었다.

태종대 등대는 무척 아름다웠다.

전망대도 있지만 커피숍도 있고 도서관도 있고 갤러리도 있었다.

등대에 이런것이 있다는건 퍽 드문일이다.

누가 설계를 했는지는 몰라도 디자인이 참 아름답고 세련되었다.

 

더우기 태종대 등대에 가면 공룡의 발자국도 있고 신선바위도 있고 망부석도 있었다.

망부석은 허구한날 그렇게 홀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놈에게 끌려간 지아비를 생각하다 어느날 여인이 돌이 되어버린게 망부석이었다.

아마 태종대에서도 제일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 바로 이곳인지도 모른다.

다른 곳은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 봐야하지만

여기엔 기암괴석을 올려다볼수도 있고 내려다 볼 수도 있다.

 뿐만아니라 해안까지도 내려 갈수가 있어 손도 적셔볼수 있었다.

물론 해녀들이 따온 성게며 명기며 해삼도 팔기 때문에

소주 한잔하면서 언 뇬을 꼬시기도  그저그만이었다.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파도가 꽤나 사납게 바위를 때렸다.

 

원래 태종대는

통일 신라시대에 태종 무열왕이 삼국 통일을 한 후

간간이 이곳에 와서 활을 쏜 활터 때문에

태종대라고 이름을 지었다.

 비가 한동안 안오면 동래부사는

 이곳까지 행차해서 기우제를 올린곳으로도 유명하다.

 

 

태종대는 120여종의 상록 활엽수와 60여종의 새가 살고 있었다.

새들중에는 부산갈매기도 그중 한 몫을 하였다.

갈매기는 보통 4종류가 있다.

재갈매기/큰재갈매기/붉은 부리 갈매기/ 괭이갈매기가 그들 이었다.

재갈매기/큰재갈매기/붉은 부리 갈매기는 겨울 철새들이다.

주로 10월경에 북쪽에서 날아왔다 한겨울을 이곳에서 보낸다음 번식기인 3월경이면 다시 북쪽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괭이 갈매기는 달랐다.

이넘은 텃새였다.

때문에 이 넘은 번식기인 5-6월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새이다.

부산 갈매기는 바로 이 괭이갈매기를 가리켰다.

이 넘은 보기보다 성질이 꽤 싸나운지 종종 한 성질을 했다.

누가 바다에 안 산다 할까봐 비둘기가 날라오면 평소엔 잘 지내지만

먹이 앞에만 서면 비둘기들은 이 괭아 갈매기 앞에서 쪽도 못썼다.

 

어젠 태종대 등대 갤러리에 잠시 다녀올 일이 생겼다.

누군가 공사를 의뢰받았는지 디자인을 좀 부탁 한다해서 일부러 아침일찍 시간을 내어서

갔다왔다.

올만에 와서 그런지 꽤 감회가 새로웠다.

갤러리를 휘둘러보고 난뒤 일부러 자갈마당에 내려가 오래동안 퍼질고 앉아 파도를 바라보았다.

한참동안 파도소릴 들으며 무심(無心)이나 좀 해볼까 했는데

요런덴 애초부터 둘이서 손을 잡고 와야 제맛인지

 지나간 여인네들 생각만 꼴꼴났다.

설마 벌써 죽은 건 아니겠제

다들 지금은 모하는지 ..............................................

(요새 같으면 폰 이라도 때려볼낀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