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는 이야기 /2
내 맘 알지예 ,,,,,,
점순네는 아침부터 몹씨 분주했다.
그것도 그럴것이 추석이 코 앞인데다가 2달여 끌어오던 건축이 마침내 준공을 마쳤기 때문이었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살림살이를 들일 일만 남아 있었다.
점순네는 오래동안 화장실이 없었다.
해서 2층을 증축하면서 처음으로 화장실 다운 화장실을 갖게 되자
그동안 남몰래 가슴앓이를 했던 것들이 한꺼번에 북받쳤던지 끝내 눈물을 보였다.
점순네 집은 영도 청학동 버스 종점 위 산복도로에서도 한참을 더 올라가야했다.
처음 점순네 집에 갔을 때만 해도 어휴 여길 어떻게 사노 ,,,,,하고 숨이 콱 막혔다.
하지만 그나마 점순네는 코너 첫 집이라 그런지 전망 하나만은 나무랄데가 없었다.
남편은 선박회사에 다니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후 머리와 허리를 다쳤는지 이제는 더 이상 아무일도 못한다고 하였다.
건축을 부탁한 강소장하고는 처이모부 사이였다.
강소장 얘기로는 원래 다른 공사업자가 이 공사를 맡을려고 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조카사위가 건축업계에서 한가닥을 한다는데 해서 조카사위한테 자문을 구한답시고 전화를 한게 사달이었다.
-글마들 그거 아무도 못 믿습니더
처 이모님은 가만히 있으이소.
내 좋은 사람 한 사람델고 갈꺼니까 ..............하고 이 넘을 추천 한 모양인데 고지대에다가 건평이래야 겨우 15평도 채 안되었다.
사실 이런 공사야 해봐야 별로 득이 될게 없었다.
하지만 존경하는 선배님 .................해사면서 강소장은 엊저녁부터 알랑방구를 뀌었다.
조카사위 체면만 제발 좀 세워달라고 애걸복걸했다.
해서 어쩔수 없이 나도 평소에 저한테 신세를 지는데 하고 그를 따라 길을 나섰더니
생각보다 작업환경이 더 열악했다.
점순네는 모처럼 조카사위가 집을 방문한 때문인지 커피를 타는둥 마는둥 했다.
너무 안절부절해서 일단 여기 까지 왔으니 온김에 설계도면이나 좀 보자했더니 동회 건축담당자가 자기 동문에게 부탁을해서 만든 것이라며 4장짜리 도면을 내 놓았다.
얼핏보니 집 장사들이 흔히 짓는 그런 집이었다.
아마도 설계를 맡은 친구가 일단 건축허가만 받아주면 된다고 그린 모양이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평면도도 그렇고 외형도 너무 진부하니 설계도를 고쳐야겠다고 하니 점순네가 펄쩍 뛰는 시늉을 했다.
보아하니 어렵사리 건축허가를 받았는데 집도 짓기 전에 설계도를 고친다고하니 설계도를 고치는 것은 고사하고 이러다가 집도 못짓는 것 아이가 하고 겁이 덜컹난 모양이었다.
암튼 건축 담당자는 내가 찾아가 협조를 구할테니 전화연락만 해 달라고 하고
다음날 커피숍에서 담당자를 만났더니 아무래도 말하는 폼이 좀 수상한지 교수이십니까하고 경계를 했다.
교수는 아니고 노가다하고 노는게 하도 좋아서 순전히 공사판에서만 살았다했더니 그냥 공사판에서만 잔뼈가 굵은 그런 노가다는 아닌 것 같은지 자꾸만 고개를 갸우뚱했다.
암튼 혼신의 힘을 기우려 아름다운 집을 지을테니까 협조해줄 수 있는데 까지만 협조를 좀 해달라고
했더니 전혀 무식한 놈 같이는 안보였던지 자기 재량이 미치는 범위내에서는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지난 10여년동안 점순네는 화장실 때문에 너무 고생을 한 모양인지 이 개명천지에 아직도 요강이 있었다.
소변을 볼때는 온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부엌에서 요강을 이용하였지만 대변만은 어쩔 수 없이 공동변소를 이용하였다고 하였다.
한밤중이나 겨울에 볼일을 보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침 출근시간에 화장실을 가야 하는게 젤 고통스러웠다고 하였다.
아침엔 동네사람들이 제다 화장실로 몰려 나오기 때문에 순서를 기다려야했다.
때문에 다른건 몰라도 화장실만은 꼭 좀 만들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한데 정화조를 묻을 만한 땅이 없었다.
아무리 적은 정화조를 묻는다 해도 최소한 가로 세로 1m정도는 여유가 있어야 뭘 하겠는데 점순네에는 그만한 땅조차 없었다.
해서 하는 수없이 석수를 불러다가 앞집과 뒷집 사이에 경계로 버려둔 바위를 깨고 그 속에다 정화조를 억지로 묻게 했더니 그나마 그것도 정화조라고 1,2층 공히 수세식 화장실이 생겼다.
문제는 전혀 엉뚱한데서 발생했다.
터가 워낙 좁다보니 부부가 기거할 큰 방 하나/ 큰 딸이 사용할 작은 방 하나/ 화장실 / 그리고 부억겸 거실을 만들고 나니 다 큰 아들이 기거할 방이 나오질 않았다.
온 식구들이 새 집을 짓는다고 좋아라했는데 막상 평면도를 작성해보니 아들방이 나오질 않았다.
하는수 없이 아들은 실내 계단을 이용하여 옥탑방에 살기로 하고 그렇게 음모(?)를 꾸몄는데 사실은 그게 불법이었다.
옥탑방은 처음에는 창고나 다락개념으로 허용을 했는데 나중엔 너도나도 살림살이를 들여 버젓이 한 가구로 행세하다보니 나중엔 아예 건축법상으로 불법건물로 낙인을 찍어버렸다.
하지만 어쩌랴 .
터는 좁고 다 큰 아들을 나가서 자라고 할 수는 없고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옥탑방을 만든 것인데 그게 화근이었다.
누군가 민원이 넣었는지 그날로 부터 망치부대들이 사흘이 멀다하고 찾아왔다.
여길 안 부수면 저길 부숴버렸다.
당시만 해도 건축을 멋으로 알고 내 딴엔 한 폼 재고 살았는데 망치부대들한테 내가 만든 작품을 난도질 당하니 화도 났지만 창피도 해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나마 한 두번 부숴버릴 때는 가난한 사람 돕는다하는 심정으로 대강 살살 패라이 해사면서 참았지만
막상 네번이나 그렇게 하자 나중엔 나도 모르게 꼭지가 돌 지경이었다.
사실 한번 부술 때마다 경비가 엄청 깨어졌는데 그걸 또 점순네한테 떠 넘길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원래 부자에게는 한평의 땅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한평이 땅이 때론 그들의 생존권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나중엔 하는 수 없이 동회담당자와 총무과장을 찾아가 도대체 행정이 뭐꼬,,,,,,,,, 하고 되도 않은 말로 씨부렁거렸더니 저거도 해도 너무 했다 싶었던지 한번만 더 참으라고 했다.
점순네 딱한 사정은 알지만 워낙 민원이 들어오니 저들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하며 오히려 저거 고충도 좀 알아달라고 하였다.
그런저런 연유로 점순네가 오늘 아침 저렇게 방방 뛰는데는 저간의 속사정 때문이기도 하였다.
숨이 막힐것 같은 그 뜨겁던 여름도 다 가고 눈물을 한옹큼 쏙 빼게 만들었던 망치부대도 사라지고 아귀처럼 날만 새면 니 잘되나보자하고 민원을 넣던 그 년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으니 우찌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까나 ..........
준공을 다 끝내고 열쇄를 넘겨주고나니 점순네는 뭔가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이 넘의 손을 끌고 청과시장으로 가더니 시장통에서 젤 좋은 배 한 상자를 사 차에 실어다 주면서 눈물을 글썽거리며
내 맘알지예 ...............................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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