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사람

집 짓는 이야기 7/ 북경이여 , 안녕 (2)

커피앤레인 2007. 12. 9. 09:18

용정 윤동주 시비 앞에서

 

집 짓는 이야기 7

북경이여, 안녕  (2)

 

 

 

 

북경은 상해와는 여러모로 달랐다.

일단 고풍스러운 맛이 훨씬 더 묻어났다.

자금성을 위시해서 천안문과 서태후의 여름별장인 이화원은 눈요기꺼리로는 일품이었다.

짐을 푼 다음 일단 현장을 둘러보기로 하고 지하철을 탔더니 제법 멀리갔다.

북경에서 제일 번화가는 호텔이 즐비한 왕푸진거리였다.

미화가 구입했다는 건물은 왕푸진 거리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고 하였는데 왕징인가 왕정인가하는 동네였다.

도로는 비교적 잘 발달 되어 있었지만 번화가와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접근성에 문제가 있었다.

손님 한사람을 받으려면 거의 하루종일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고개를 몇번이나 갸우뚱거리자 송자는 오빠 왜그래,,,,,하고 지가 더 근심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 여긴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

-왜?

-접근성이 너무 떨어졌다. 손님이 이곳까지 찾아오려면 시내에서 전철을 타고 2-30분 정도 와야하는데 거기서 다시 택시를 타야하다니.

  더 중요한건 주변여건이 전혀 아닌 것 같애.

-그럼 어떻게 해야해 ?

-하는 수 없지. 왕푸진 근처에 자리를 잡던지 아니면 여건이 성숙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

욕심을 부리면 오히려 화를 자초할 것 같다.

-그래?

 

 

송자는 순간 무척 난감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가 소개해서 한국에서 여기 까지 날아오게했는데  막상 디자인을 해줄 수 있는 곳이 아니다하고 거절을 하니 너무나 뜻밖인 모양이었다.

하긴 그건 저보다 내가 더했다.

올만에 북경에다가 내작품을 하나 남길 수 있나해서 특별히 시간을 내어서 찾아왔는데 입지 조건이 전혀 맞지않아 그냥 포기하려니 맥이 확 풀려버렸다.

 

 

 

물론 누구처럼 디자인을 하는 사람은 주어진 공간에 따라 디자인만 해주면 되었다.

거기에 덧붙여 시시콜콜하게 장사가 되느니 안되느니하고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설령 나를 찾아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필요하다면 어떤 경우에라도 공사를 해줄 수는 있지만 적어도 책임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전반적인 것을 걸러줄 책임도 디자이너에게는 있었다. 

만에 하나 내가 만든 집이 입지적인 조건이나 다른 영향으로  인하여 망하기라도 한다면 그 스트레쓰는 일반사람의 상상을 초월했다. 

때문에 돌다리도 두드려간다고 망할 확률이 성공할 확률보다 더 많은 곳은 되도록이면 피하는게 지혜였다.

풍수지리를 오래동안 연구한 사람들은 땅의 생김새만 보고도 그 땅의 기운이 솟을 것인지 아닌지를 짐작하듯이 디자인을 오래하다 보면 그와 비슷한 직감들이 생겼다.

해서 미화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었지만 암튼 디자인을 맡을 수 없다고 하였더니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중국인들 왜 인테리어 공사하는 사람이 없고 디자이너가 없겠냐마는 그러나 하룻밤이 지나자 미화도 뭔가 느끼는게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그 집은 다른 용도로 쓰도록하고 세를 놓기로 했다.

 

 

비록 내 말에 의하여 졸지에 공사도 잃고 돈도 잃어버렸지만(경비만 150여만원이 깨어졌다) 그래도 마음만은 홀가분했다.

일단 디자인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사라지자 이틀동안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예약된 비행기를 탈려면 북경에서 적어도 이틀은 더 기다려야했다.

그렇다고 무료하게 호텔에 누워서 두 남여가 있기도 뭣해서 어차피 북경에 온 것이니 구경이나 실컷하자하고 송자와 함께 자금성과 천안문과 이화원을 둘러보고는 저녁에는 이북에서 경영한다는 옥류관에도 가보았다.

옥류관은 연변에 있는 유경호텔보다는 더 크고 화려했다.

유경호텔 역시 이북에서 경영하는 호텔이었는데 규모는 옥류관보다는 훨씬 작았다.

하지만 조기찜과 평양냉면만은 일품이었다.

서빙하는 여자중에 김 숙향이라던가 뭔가 하는 여자애가 있었는데 ,,,,,,,,,,,,,,(물론 지금은 그녀의 이름도 잊어버렸지만 설혹 안다고해도 그녀의 신상을 위하여 밝힐수도 없지만  ) 유독 필이 통하는지 늘 내곁에 와서 서빙을 했다.

인물도 예뻤지만 매너도 반듯했다.

송자는 오빠 저 애 오빠 좋아하나보다하고 놀렸지만 체제가 다르다보니 찐한 얘기도 한마디 못건넸는데

저도 그런지 저녁을 먹고 일어서자 인차 가십니까 하고 바깥까지 나와 깍듯이 배웅을 하였다.

얘? 인차 가십니까 하는 몬 말이야,,,,,,하고 송자에게 물었더니 곧바로 가느냐는 뜻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며칠 더 연변에 있다가 북경을 들렸다 한국으로 간다고 했더니 북경으로 떠나기전에  다시 한번 더 들렸으면 하였다.

그래서 꼭 그런것만 아니지만 연변을 떠나기 전날밤 다시 한번 갔더니 반가운 빛이 역력했다.

해서 저녁을 먹은 다음 팁을 주었더니 그 전날은 한사코 받길 거절했는데  그새 내부적으로 무슨 토론을 했는지 그날은 그 애만 주면 눈치가 보일 것 같아 마지막 날이라고 종업원 수 대로 다 나누어주었더니 그제서야 정중하게 팁을 받았다.

암튼 여흥도 끝나고 밤도 깊어 더 이상 있기가 뭣해 아쉬운 발길을 뒤로 하였는데 그녀 역시 뭔가 아쉬움이 남는지 혼자 따라 나오더니 통일이 되면 꼭 다시 만나자고 하고는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져버렸다. 

연변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끝이 났는데 마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재현하듯이 우리는 서로 뜻모를 말만 남긴체 그렇게 헤여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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