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사람

에잇, 울면 우야노,,,,,,,,,,,,,,,,

커피앤레인 2007. 12. 10. 12:09

 

집 짓는 이야기 /8

에잇, 울면 우야노,,,,,,,,,

 

 

강나루엔 초저녁부터 손님이 온 모양이었다.

막 서류를 정리하고 자리를 일어서려는데 목여사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바쁩니꺼?

-아니 . 지금 나갈려고요

-안바쁘면 퍼떡 함 와보이소

-왜요?

-누가 샘 함 보고 싶다네요

보고싶다 .......................? 누가왔지 ?

해가 지려면 아직도 꽤나 이른시각인데

설마 멤버들이 모인건 아닐게고 그렇다고 묘령의 여자가 날 보고 잡다고 할 리는 만무할텐데,,,,,,,,,,,,,,,,,

암튼 터벅터벅 걸어갔더니 한 사내가 이미 술에 취해 혼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알고보니 붉은 색갈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박 모 화가였다.

아마도 출입구에 그려둔 그래픽 디지인을 보고 충격을 받은 모양인지 도대체 이 넘의 꼬라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함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누기엔 그는 이미 너무 취해 있었다.

 

 

강나루는 송재 이상개 시인의 부인인 목여사가 경영하는 조그마한 목로주점이었다.

집은 조그마했지만 간판 하나만은 건사했다.

서예가이신 율관선생이 직접 쓴 글체였는데 물론  간판하는 사람이 글을 그대로 따 붙였지만 글씨 하나만은 언제나 봐도 아주 힘이있고 운치가 있었다.

목여사는 한길을 운영하다가 혜원을 맡은 뒤로는 힘에 부쳤는지 한동안 아파 누워있었다.

경아와 함께 울 삼실로 찾아온 날도 얼굴이 몹씨 부석부석했다. 

당시만해도 아직 완쾌한 몸은 아니었지만 집안 형편상 매양 놀기는 그렇고 그래서 점포를 하나 볼려고 하는데 잠시 봐주면 안되겠느냐며 찾아왔던 모양이었다. 

조건은 권리금도 없고 전세와 월세도 그만하면 별 무리가 없는데 막상 가보니 너무 외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해서 여긴 아무래도 좀 어렵겠다 했더니 예의 지금의 이 곳을 인수를 한 모양이었다.

이 곳은 원래 연극 배우인 행심이가 하던 장소이었다.

행심인 몬 연유인지 길 건너 더 위쪽 일본식 나가야 집으로 옮겼는데 아마도 주인하고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았다.

원래 이 거린 예로부터 갤러리와 골돌품상이 즐비했기 때문에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은 곳이었다.

때문에 서울 인사동 거리하고는 비교도 안되겠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내노라하는 작가는 한번쯤 다 거쳐간 그런 유서 깊은 골목이었다.

해서 구태여 손님을 기다리며 목을 뺄 그런 곳은 아니었다.

송재선생 부부하고는 원래부터 가족같이 지내는 사이이다보니 아무리 허름한 술집이라도 손님을 받으려면 여자가 분칠을 하듯이 그래도 뭘 좀 꾸며야 할 건데 문제는 돈이 없었다.

-얼마나 가지고 있는데.............................하고 물었더니 수중에 갖고 있는 돈이라고는 단돈 500,000원이 고작이라고 하였다.

원래 딥다 복이 없는건지

아니면 하나님이 니는 이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들 좀 도와주고 봉사만 하고 온나 했는지는 모르지만

암튼 내게 오는 사람은 잘 나갈 때 돈 다 까먹고 마지막에 찾아와 요게 마지막 재산입니다하는 사람이 참 많았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정작 내 등에서는 땀이 났다.

이걸 어떻게 해야 성공을 시키겠노하고 골머릴 짜고 또 짜야했다.

말이쉬워 10평이지 10평을 50만원을 가지고 인테리어를 한다는건 무리였다.

하지만 오는 손님들이 그 바닥에선 다 한가닥 하는 손님들이다보니 입맛이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해서 너무 썰렁해도 술맛이 안나고 너무 비까 번쩍해도 술맛이 안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좌우지간  이걸 우야믄 좋노하다가 돌아오는 토욜에 민속장터에 가서 내버린 문짝 5개하고 여물통 하나를 일단 사자고 하였다.

 

토욜아침  민속장터는 의외로 한가했다.

장은 벌여놓았지만 너무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다.

덕분에 이것저것 찬찬히 구경 하다가 마침 맘에 드는 문짝 두개가 눈에 띄여 값을 물었더니 16만원을 달라고 하였다.

순간 저걸 목공소에서 짜면 얼마나 줘야할까 생각하니 저 재질로는 최소한 한짝당 30만원에서 50만원은 족히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만큼 손이 많이 잡히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목재재질도 그만하면 좋은 편이고 상태도 아주 훌륭해서 얼른 그것부터 샀다.

그런다음 다시 휘 둘러보니 그보다 못한 문짝 3개도 그 값을 달라하여 예의 명함을 내밀었더니 에잇 밑지는데 하면서 주인이 3분의 2값으로 넘겨 주었다.

처음 계획대로 소 여물통마저  하나 더 사고나니  32만원이란 돈이  그새 홱 달아나버렸다.

이제 목여사 수중에 남은 돈이라고는 18만원이 고작이었다.

이걸 가지고 칠도하고 벽지도 바르고 문도 꾸며야 하는데 참으로 난감했다.

 

 

옛말에 그랬던가............궁하면 통한다고  ,

어차피 없는 살림에 이미 일은 벌여놓았으니 어쩔수 없이  몸으로 때울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해서 평소 익힌대로 칠은 내가 직접할테니 에나멜 무광 흑색 한갤론하고 에나멜 신나를 조금 사기로 했다.

그리고 벽지는 사보당에 가서 한지를 사와 목여사와 둘이서 바르자고 했더니 목여사도 어느정도 신바람이 나는지 같이 길을 따라 나섰다.

사보당은 부산 데파트 2층에 있었는데 자주는 안갔지만 인테리어 소재를 구하려 종종 들렸기 때문에 주인하고는 막연한 사이였다.

올만에 사보당에 들려서 그런지 주인이 무척 반겼다.

-아이구 선생님 여기 우얀일로 왔습니꺼 하고 자리를 권하더니 차부터 내어 왔다.

-오늘은 뭐 많이 사지는 못하겠고 그냥 한지나 조금 살려고 들렸습니다

찾는게 있는지 모르겠네 ....하고  잠시 주위를 두리번 거렸더니 아이고 한지는 나중에 사고 차부터 먼저 맛보라며 귀한 차라고 귀뜸을 했다.

아마도 얼마전에 중국에서 들어온 모양이었다.

차 맛이 아주 독특하고 좋았다.

목여사는 종이를 사러왔다가 차를 마시니 몹씨 애가 쓰이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대접은 대접이니까 차를 한모금 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나 다시 한지를 골랐더니 내가  생각했던 그런 한지가 좀처럼 눈에 띄이지 않았다.

찾는 한지가 없다고 했더니 주인얘기로는 그런 글씨가 써있는 한지는 잠시 나왔다가 금새 없어지기 때문에 그 때를 놓치면 다시는 구하기 힘들다고 하였다.

해서 차선책이지만 훈민정음 같기도 하고 불경같은 글들이 빽빽이 쓰여 있는 한지를 구한 다음

종이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종이집에 들려 한지에 물감을 들인 색한지를 한뭉큼 사 갔고 돌아왔는데

작업은 낼 오후 부터 하자하고 서로 헤어졌다.

사실이지만 근  20여년을 인테리어 디자인은 했지만 내 손으로 직접 칠하고 벽지를 바르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어려울때 도울줄 아는 이웃이 참 이웃이듯이 남이 아플때 도울수만 있다면 그까짓 수고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암튼 다음날 오후 일찌감치 일을 끝내고 대충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강나루에 갔더니 율관선생은 율관선생대로 간판에 붙일 글씨라며 써 왔는데 글씨가 보통 예사롭지 않았다.

힘이 무척 느껴졌다.

 

 

 일단 냄비에 밀가루를 풀어 풀을 쏜 다음 목여사는 홀바닥에다 신문지를 깔고 풀을 바르고 나는 한지를 붙였는데 원래 한지는 잘 처지기 때문에 다른 벽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한장 한장 정성이 필요했다.

이틀동안 나누어서 한지를 다 붙이고 난뒤에 아래쪽은 적갈색 색한지로 띠를 두르듯이 사방을 뺑 둘렀더니 보기에 따라서는 여염집 같기도 하고 새색씨 안방 같이 아늑하기도하였다.

원래 집을 지으면 지나가는 개도 한번쯤 들여다 본다고 했듯이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삐꿈이 들여다보면서 이집에 오늘 모하노하고 ,,,,,,,,,,,,,,,,,,,물었는데 이 놈을 보고는 왠 일이니? 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러던지 말던지 내 할일만 열심히 하자 목여사는 병 뒤끝이라 그런지 아니면 일을 안하다가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풀을 바르는 것도 몹씨 힘이 드는지 자주 쉬었다.

하지만 이 고급(?)인력도 도배를 하는데 차마 주인이라면서 허리아프다는 소리를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자칫 잘못하면 분위기가 착 가라앉을 것 같아 이 넘이 간간이 우스개 소리를 했더니 그 속에서도 설음이 북받치는지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에잇 울면 우야노 남은 웃자고 한 소리인데 ...................하고 힘을 내라고 달랬지만 울렁거리기는  이 넘도 마찬가지였다.

 

 

암튼 도배를 다 끝내고 등도 감싸고 테이블도 칠하고 출입구 문도 색을 바꾼 다음 마지막으로 여물통에 화초를 심었더니 그런대로 분위기가 확 살아나는 것 같았다.

목여사는 아는 스님으로 부터 받은 날이 있는지

금요일인가 목요일인가 개업을 했는데 그동안 이런 문화에 굶주렸던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지 한동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메어터졌다.

물론 그런저런 덕도 있었겠지만 암튼 송재선생 부부는 그새 집도 옮기고 아이들도 다 잘 되어 큰 딸애는 얼마전에 관세쪽에서 일하는 사내와 결혼을 했고 둘째 딸 아이는 상고 출신이면서도 국립 해양대학교에 느끈히 들어가 주위를 놀라게 했는데  어느날 마눌이 영화가 보고 싶다고하여 주말에 극장엘 갔더니 목여사 둘째 딸이 방학중에 매표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초대권 두장을 줘 졸지에 공짜 구경을 했다. 

 왠 이런 횡재가 ,,,,,,,,,,,,,,,,,,,,,,,,,,,이걸 두고 심은대로 거둔다는 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