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역
집 짓는 이야기/ 6
북경이여, 안녕 (1)
기차는 밤새 달렸다.
두문에서 북경까지는 장장 24시간이 걸렸다.
우린 늑장을 부리다가 하마트면 기차를 놓칠뻔했다.
미화는 애가 타는지 속력을 최대한 올렸다.
연변에서 꽤나 유명한 미화는 아우디를 몰 만큼 상당한 부자였다.
연변에서 북경으로 이동하는 이유는 미화가 새로 만들 성형외과 인테리어 디자인을 의뢰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못내 아쉬운듯 손을 내 밀었다.
기차는 연변에서 손님을 다 싣자 이내 그 육중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차는 중국내륙을 한참을 달렸다.
중국기차는 우리와는 사뭇 달랐다.
3등칸은 네 사람이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의자가 몹씨 딱딱해 보였지만 중국사람들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았다.
3등칸을 지나자 연이어 2등칸이 나왔는데 2등칸은 좌우로 침대가 상하 3개씩 있었다.
한칸에 6명이 자도록 배치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오후 2시30분경에 떠나는 기차를 타면서 미리부터 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칸칸마다 사람들이 자리를 펴고 마작을 하고 있었다.
2등칸을 지나자 드디어 우리가 머무를 곳이 나왔다.
중국에서는 그게 젤 좋은 좌석이라고했다.
좌우 상하로 침대가 2개씩 있었는데 문이 달려있어 중간에 한두번 표 검사하는 것 외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해서 그 안에서 둘이서 사랑을 하던지 잠을 자던지 발가벗고 누워있던지 그건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다.
안에서 문을 걸어 잠글 수 있어 밤새 잠을 자도 걱정이 없었다.
북경으로 가는 길은 꽤나 먼 거리였다.
기차는 산허리를 끼고 시골로 시골로만 달렸다.
이따금 중국농촌을 지나쳤지만 집집마다 겨울먹거리로 옥수수를 매달아둔게 고작이었다.
땅이 넓어서 그런지 거주지를 조그만 벗어나도 들판은 그야말로 황량했다.
도문에서 차표를 예매할 땐 1등칸 표가 없다해서 웃돈까지 얹어주고 겨우 표를 구했는데
반대편 침대칸은 북경에 도착할 때 까지 아무도 타지 않았다.
해서 송자는 남의 눈을 의식 안해도 되겠다며 너무 좋아라했다.
가이드를 자청한 송자는 실은 중국에서는 보기드문 인텔리였다.
키도 컸지만 인물도 그만하면 미인축에 속했고 센스도 있었다.
밤새 우린 자다 앉았다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연변은 서시장이 꽤 유명했다.
우리의 60년대 비슷했는데 그곳엔 북한산 동태도 있었고 한국상품도 꽤 많았다.
상점마다 한문과 한글로 쓰여있어 그리 불편한건 느끼지 못했다.
간혹 거리를 나서면 앵벌이들이 몰려들어 돈을 달라고 하였다.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아는 것 같았다.
연변엔 한국처럼 찜질방도 있었고 노래방도 있었다.
찜질방은 규모가 상당히 컸다.
간간히 큰 방에 모여 댄스겸 운동을 했는데 모르는 사람들도 서로 어깨를 주물러 주곤했다.
리더를 따라 좌우로 방향을 바꾸다보니 한번은 이 여자 어깨를 한번은 저 여자의 어깨를 또 주물러 주었는데 중국 여자이어서 그런지 기분이 묘했다.
미화는 차 키를 넘겨주며 두만강까지 차를 몰아 보라고 하였다.
중국의 고속도로는 우리와 거의 유사했다.
하지만 두만강까지 갔다오는 동안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를 만난 것은 고작 두대뿐이었다.
그만큼 도로가 한량했다.
두만강은 겨울이라그런지 물은 거의 없고 잡초만 가득했다.
다리건너 북한군 초소가 보였고 이따금 북한군이 나왔다 사라지곤했다.
저 곳 역시 우리의 산하다............하고 생각을 하니 이상하리만치 가슴이 울렁했다.
중국과 북한은 다리를 사이에 두고 사는 이웃동네 같은 느낌이었다.
얼핏보아도 정서적으로 꽤나 친해보였다.
도문에서 점심을 먹고 다음날은 용정으로 가보고 싶었다.
용정은 연변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연변에서 20-30분 정도면 닿을 거리였다.
윤동주 시인이 다녔다는 용정중학교는 겨울인데도 학생들이 나와 공부를 하고 있었다.
교문을 들어서자 윤동주 시비(詩碑)가 보였다.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염원하는 윤동주의 서시가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밤새 북경을 향하여 달리던 기차는 어느곳에 이르자 연료를 보충받아야 하는지 거의 30분동안 꼼작도 하지 않았다. 석탄냄새가 코를 찔렀다.
문득 예전에 할머니집 가던 생각이 났다.
그때도 지금처럼 저랬는데 송자는 내복차림으로 이미 잠에 떨어졌는지 꼼작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오후 3시경에 이르러서야 기차는 북경역에 도착했다.
북경의 겨울은 생각보다 덜 추웠다.
몇해전에 상해에서 봤던 분위기하고는 전혀 달랐다.
북경역 주변엔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디론가 떠나고 또 어디에선가 올라오는 사람들이 뒤엉켜있었다.
숙소로 예정된 중앙호텔은 오픈한지 얼마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작지만 모든게 깔끔했다.
숙박비는 우린돈으로 약 3만원 정도 했다.
하지만 중국은 어딜 가나 숙박비보다 보증금조로 돈을 더 맡기라고 요구하였다.
'집과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잇, 울면 우야노,,,,,,,,,,,,,,,, (0) | 2007.12.10 |
---|---|
집 짓는 이야기 7/ 북경이여 , 안녕 (2) (0) | 2007.12.09 |
5/ 입금님의 밥상 (0) | 2007.12.07 |
사과 한 상자 줄게요 (0) | 2007.12.06 |
3/ 연애 하는 기분이 이런걸까 (0) | 2007.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