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아침에 쓰는 일기 / 세수도 안한 여자

커피앤레인 2009. 11. 7. 12:29

 

 김 충순作

*작가 김충순씨는 전주에 사는 전업작가이다. 불란서에서 그림공부를 한 이력 때문인지 보이지 않는 어떤 해학같은게 있었다. 그의 그림엔 독특한 꽃문양이 자주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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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6

세수도 안한 여자

 

 

 

여자의 아름다움은 무죄라 했던가

촌넘한테서 또 전화가 왔다.

-행님 오후에 드라이브나 갑시다.

-드라이브 ?

-아따마 삼실에 늘 붙어있으면 떡이 나오요 밥이 나오요

바람도 쐴겸 어디 한바퀴 휘돌고 옵시다

나오면서 그 뇨자한테 전화함 해보소

같이 데리고 가게

-그 뇨자 ?

내가 뭐 니 시다가 ? 자슥아

그 뇨자한테 전화를 하게

니가 직접해라

-아따마 내가 잘 모르니까 그런것 아이요

 

 

하긴 드라이브를 할려면 숫넘들 둘이서 가봐야

무슨 재미겠노

그래도 분냄새라도 맡으려면 뇨자라도 끼여야

제 맛일터  

해서

-모하지 ?

 하고 문자를 때렸더니 단박에

-아는 언니하고 꽃시장 나왔어요

하고 이내 문자가 되돌아왔다.

-꽃시장 ?

그 이후엔 모할껀데

-집 지켜야죠

-집? 그럼 드라이브 안갈래여

-드라이브?

오늘은 세수도 안했는데

-뭐 뽀뽀도 할 사이도 아닌데 세수하면 모하고 안하면 모하는데

촌넘이 오늘 좀 일찍 마쳤다고 같이 드라이브나 하자네

단풍도 볼겸 통도사나 한바퀴 돌고옵시다

-아 그 아저씨

 

 

늦가을

통도사는 아직도 요사채를  짓고 있었다.

천년 고찰이라서 그런지 세월의 풍상이 여기저기 배여 있었는데

이미 단청이 떨어진건 먼 옛날 이야기였고

그나마 알몸으로 비바람을 견딘 세월들이

울할매 뱃가죽만큼이나 흐느적거렸다.

한낮인데도 오후 예불이 있는지  불경 소리가

자못 요란했는데

단풍은 예전처럼 그리 아름답지 않았지만 가을 맛은 여전했다.

두 뇨잔 염불보단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지

배가 고프다고 아까부터 징징거렸다.

 

 

해서 가까운 곳에 가서 우선 밥부터 먹자 하고  

무릉도원을 안내 했더니

이런델 우예 다 아느냐고 뇨잔 고갤 갸우뚱했다.

-아베크 코스다이

해사면서 따라온 뇨자들이 좋다고 고개를 끄떡했다.

-왕년에 마누라 데리고 많이 다닌곳이여 했더니

곧이 곧대로 들리진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던지 저렇던지

산채비빔밥을 시킨다음 창가에 앉아 호수를

멀끄러미 쳐다보는데 왠 낯선 뇨자가

입맛이나 다시라면서 집에서 담근 과일주라며 내어왔다.

-주인은 안보이네요

-아 외출하셨어요

-그래요?

 만났으면 엄청 반가와 했을건데

같이 온 뇨잔 밥을 반쯤 비우더니 그제서야 눈이 똑빠로 띄인다며

하마트면 죽을뻔 했다고 했다.

 

 

암튼 밥도 먹었겠다 솔차도 마셨겠다

돌아오는 길에

신정희 선생 요에나 잠시 들려보자하고 안내를 했더니  

입구에 늘어선 노란 은행나무 잎이 너무 아름다웠다.

물론 선생은 작년에 이미 작고 하셨기 때문에

응당 안계시는건 뻔한 일이고 해서

바깥 뜨락만 잠시 거닐다 왔는데

뜨락은 선생이 계실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고즈넉했다.

 

 

한데 넓은 잔디밭 모퉁이 모퉁이 심어놓은 감나무엔

대붕이 허들스럽게도 많이 달려있었다.

물론 공방엔 젊은 도공들이 부지런히 생활도자기를 만들고 있었고,,,,,,

해서 모두들 양산 통도사보다 오히려 여기가 더 마음에 든다며 좋아라했는데

 

 

이 넘왈

-그래서 오나가나 뇨잔 남자를 잘 만나야 하는거요

이 넘을  안만났으면 여기 이런게 있는줄 우찌 알기나 했겠우 ...........했더니

그건 맞단다.

 

한데

촌넘은 그 뇨자 그 뇨자 하더니 막상 데려주니 입도 벙끗안해서

-니 주눅이 들었나 ? 세수를 안해서 그랬나 ? 와 그라노 했더니

-아따마 행님도 .

해사면서 오늘따라 숙녀 앞이라고 담배도 안피운다고 했다.

(지랄로 지랄로 ...................니가 온제 부터 숙녀 찾았는데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한 데 더 웃기는것은 요 넘의 뇨자 말이 걸작이었다.

-남잔 늙을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어야한다나 우짠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