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아 - 숨어우는 바람소리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예전에는 가을이 되면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행자가 없어도 홀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서라도 바람처럼
훌쩍 떠났다가 오면 가을의 향기를 느끼고 왔노라고 흐뭇해 했는데
이제는 그런 흐뭇해지는 감정들은 다 어디로 가고 뜨겁던 여름은 언제 가고
가을이 성큼 왔는지 물어보게 됩니다. 불타는 단풍이 그리 곱지도 않습니다.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올 것이고, 가는 가을만큼 시간이 가고 있는 것이고
시간이 간다는 것은 한 발자욱씩 육신은 노쇄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문턱 앞으로 다가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의 국화향기가 진하지만 그것은 쇠락을 눈앞에 둔 무상한 것이기 때문이라면
우리 사는 삶도 무상한 것이라 즐거운 것이 없어지는 것이 됩니다만
그렇다고 슬퍼할 그 무엇도 없는 것이라면 담담하게 가을이 오고 가고 있구나,
그 속에서 나는 어디만큼 가고 있는지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고가는 인연의 고리 속에서 누군가는 마음에 안 들어 미워하고 보기 싫어지고,
만나기 싫고 말하기도 싫어지지만 그것이 경계를 지닌 것이라면
참 수행을 자시 시작해야 할 것이지요. 자타가 한 몸이라면 왜 그런 마음의 끄달림이
생기는지 억울한 일입니다.
이곳 경기도의 바람은 많이 차가운 것 같습니다, 겨울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오는 겨울 어쩔 수 없는 일인데 무슨 걱정을 하겠습니까?
걱정 또한 무심한 것이라 추우면 추운 데로 더우면 더운 데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마음은 일심정진 수행을 해야 하는데 몸은 눕기 좋아하고 쉬기 좋아하고
생각하기 싫어하고 그렇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나마 가을은 언제 이런 향기 앞세우고
왔을까 물어보아도 대답은 없습니다.
가을 속에서 어떤 고운 인연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그것 또한 허무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허무라는 것을 배우고 익히고 있기 때문에 사람으로 인한
인연의 고리를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지 가을은 왜 이렇게 고운 모습으로
눈물 글썽이게 곁에 머물고 있는지 우울한 마음자리 탓입니다.
가을의 바람 속에서 지장보살은 끊임없습니다.
누군가가 이 세상에 온다 해도 지장보살은 영원할 것이고 누군가가 하루아침에
세상을 등진다 해도 지장보살은 변함없이 중생의 삶을 안내하는 방편이 될 것이겠지요.
그런 것일까요? 그 무상 속에서, 그 허무함 속에서 우리는 그것들을 이기기 위해
변함없이 기도정진을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다보면 그 허무의 속살을
만질 수가 있을 것이고, 그 무상의 실체를 만지고 느낄 수가 있어지겠지요.
무상의 자리 또한 떠난 그 본래자리에 이를 수가 있겠지요.
이렇게 허무하고 무상하다고 하는 그 본래성품을 볼 수가 있겠지요.
언제는 가을이 오지 않았을까요만, 언제는 겨울이 오지 않았을까요만
이번 가을은 그렇다고 생각하고 다시 점검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고가는 허무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런 글 또한 쓸 거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시간은 왔고 갔습니다. 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과거도 없고 미래 또한 없습니다.
오직 현재 이 시점만 있을 뿐입니다. 가을이라고 여기는 이 마음만 있을 뿐입니다.
가을의 밤 공기가 그러네요, 웃기지마라. 가을도 별 것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모든 것은 공인데 가을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네요.
공을 향해 가는 우리 삶이 적막합니다. 쓸모없이 쓸쓸합니다.
다들 바쁘다고 하지만 정작 무엇을 위해 바쁜지 물어보고 싶은 저녁
가을이 가고 있다고, 허상을 붙들고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당신과 저의 가을은 불타고 있지만 마음은 늘 혼자 어두운 그늘만 만들고
있는 저녁 시간이 가을을 붙들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아는 시인의 글방에서 잠시 빌려왔습니다
오늘은 그냥 조용히 쉬어볼까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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