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영화가 내게로 왔다

커피앤레인 2013. 3. 17. 16:58

 

 

영화가 내게로 왔다

 

 

 

 

오랜만에 여행을 한 탓인지 기분이 무척 상쾌했다.

태화강 대밭 십리길도 여전했고 각시탈 부부도

예나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었다.

달라진게 있다면 스테이지 뒷편에 커다란 LCD TV가

한대 떠억 버티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얼마전에 KBS 아침마당에

온가족이 음악으로 똘똘 뭉친 패미리라 하여

인터뷰를 했나보다.

순간순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는데

딸/사위까지 가세한걸 보니 제법 멋져보여

미모는 여전하네.....................하고 농겸 칭찬겸

한마듸했더니 이젠 그 님도 늙는다나 우짠다나.

하기사 여자 나이 50이면 조금은 신경이 쓰일나이겠지.

하지만 부부는 이 놈을 여전히 살갑게 대했고 나는 그런 부부를 참 좋아했다.

 

 

경주 호텔 커피숍은 여전히 한가하면서도 품위가 있어보였다.

예전엔 마누라하고 자주 여기서 커피를 마셨는데

이젠 아이들도 다 크고 또 뿔뿔이 흝어져 있다보니

그런 풍취를 즐길 여유조차 없어졌지만

초봄의 고느적함과 넉넉함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바 없었다.

물론 돌아오는 길은 동해안을 따라 차를 몰다

정훈희 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카페 꽃밭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신 후 임랑 해변가에서

예의 숨어우는 바람소리를 한가락 뽑았는데....................

목소리가 너무 컸나?

동행한 님이 모라모라 또 궁시렁거렸다.

 

 

밤엔 올만에 김사겸 영화감독이 쓴

영화가 내게로 오다를 읽었다.

김사겸 감독님은 유현목감독님과 함께

우리나라 1세대를 풍미한 감독으로 창수의 전성시대를

만든 감독이었는데 이 놈하고는 형 아우 할 정도로

정이 깊었다.

한데 등잔 밑이 어둡다했던가?

감독님 글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한국영화사(史)는 물론이고 세계 영화를 넘나들면서

니힐리즘이니 리얼리즘이니 예술성이 어떻니하며

감독님 나름대로 재치가 번뜩이는 평을 했는데

문제는 감독님이 쓴 씨나리오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란다.

/서울 모 필름에 보냈는데 아직 소식이 없네

/보나마나 씨나리오가 좀 시언찮았겠죠

/모라?

/제가 함 볼게요.복사본 있으면 언제 함 가져 와 보이소

내가 각색해줄게요.

/우사장 니가?

감독님은 어이가 없다는듯이 허이야고 웃었다.

/알았다.내 다음에 우사장 삼실에 올 때 가져올게

 

 

400페이지 가까운 책을 단 하루만에 거의 절반을 읽고 나니

간밤에 괜히 큰소리쳤나보다 하고 후회 아닌 후회가 되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감독님보다는 내가 좀 더 각색을 잘할 것 같았다.

영화나 예술이나 제대로 될려면 조금은 괴팍스럽고

성질도 좀 지랄 같은데가 있어야 하는데

그 점에선 내가 훨 나을 것 같아 내가 함 봅시다 했는데

감독님 생각은 나와 전혀 딴판이었나보다.

/나는 니가 너무 순진해서 그게 더 걱정이다하고

혀를 끌끌 했는데 ..............................

괜스리 뻔데기 앞에 주름만 잡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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