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가는 길이지만 그래도 여행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했다.
어젠 공사계약 관계도 있고 3.15 아트 홀에서 큰창원 콘서트도 있어서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공사를 의뢰한 여인은 굳이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2006년도인가,
중국 베이징 성형외과 디자인을 의뢰 받으면서
처음으로 만든 포토폴리오를 챙기다
새삼 세월이 이렇게 많이 지나갔나?하고 격세지감을 느꼈다.
비행기를 타고 처음으로 연변에 내렸을 때
가방에 붙어 있어야 할 태그가 뜯겨나가
한동안 우왕좌왕 했던 일이 불현듯 생각났다.
다행히 가방 속에 포토폴리오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당시만 해도 중국은 남의 가방을 자기 것 처럼 속여 들고 나오는
경우가 허다했나 보다.
짧은 중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이것 내가방 틀림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중국어는 내가 짧고 영어는 저쪽이 못알아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포토폴리오를 꺼내
프린트된 내 작품들과 영문으로 된 이름과 여권을 번갈아 비교하더니
그제사 여 공안이 오케이 하고 사인을 했다.
나를 마중나온 여인은 그 모습이 자못 재미 있었나보다.
아우디를 몰면서 내내 킥킥거렸다.
연변은 마치 60년대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덕분에 연변도 보고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용정 중학교도 가보고
두만강도 구경했지만 연변에서 북경을 가려면 24시간 기차를 타고 가야했다.
올만에 새 전자여권을 신청했더니
옛날 기록이 그대로 나오는지 jong과 ik 사이를
-으로 띄울건지 붙일건지 물었다.
성가시게 띄우지말고 붙여 달라고 했는데
일단
새 여권이 나오면 가까운 일본부터 한번 다녀올까 한다.
미찌고가 사는 히로시마 까지는 너무 멀고
대마도에라도 가서 2박3일 푹 쉬고 싶은데 ..............
암튼 큰창원 콘서트는 생각보다 관객이 많았다.
마지막 순서는 한국음악협회 마산지부장인 안병억씨가 맡았다.
안회장은 나하고 정서가 아주 비슷했다.
내 닉이 커피앤레인이라고 하자
우짜믄 자기와 그리도 비슷하냐며 크게 반가와했다.
파이널 송은 합창으로
저 들밖에 한 밤중에 와 경기민요인 경복궁타령을 불렀다.
전 출연진이 모두 나와 코러스를 했는데
관객도 출연진도 모두 흥에 겨운 참 아름다운 밤이었다.
새벽 2시 부산광복동은 여전히 불야성이었다.
우린 출출한 배를 채우려 그 시각에
뼈다귀해장국집 문을 두드렸는데 ................
왠 넘의 인간이 우찌도 그리 시끄럽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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