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송도와 세한도
CLASSIC이란 말은 CLASS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CLASS란 원래 최고라는 뜻이었다.
예전에는 별생각없이 음악을 즐겼는데 어쩌다 작은 음악회를 기획.연출을
맡아 해보니 왜 사람들이 최고에 그렇게 열광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겨울이 오면 추사 김정희선생의 세한도 발문이 생각났다.
세한도는 추사선생이 제주도 유배생활 중 그린 그림이었다.
제자 우선(藕연뿌리 우 船배 선 ) 이상적에게 준 그림인데
이상적은 역관(요즘 말로하면 통역관이었다)이었다.
발문은 편지형식처럼 쓰였는데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세한연후 지송백후조야)
날이 추워봐야 송백(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알겠드라는
뭐 그런 뜻으로
좋은 날에는 형님 형님.선생님 선생님 하고 따라 다니다가
형편이 어려워지자 내 니 언제봤노?하고
등 돌리는 오늘의 세태와 별반 다를바가 없는 내용이었다.
이상적은 중국을 다녀올 때 마다 책과 종이와 여러 물품들을 구입해
그 험한 뱃길도 마다않고 무려 7번이나 제주도로 찾아와 귀향살이하는
스승인 추사선생을 위로하고 건네주었다는데
그런 의리 때문에 추사선생이 그를 공자가 인정했던
송백(松柏) 같은 사람이라고 이 그림을 선물하였다고 하였다.
추사선생의 증조부는 김한신으로 영조임금의 사위였다.
추사는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 23살 때 중국연경(지금의 북경)을
방문하여 당시 70이 넘은 대학자 옹방강을 만났는데
옹방강의 호는 담계(覃미칠 담 溪시내 계)였다.
추사는 담계를 평생 존경하여 그의 서재 이름조차 보담재寶覃齋)라고 할만큼
그를 흠모하였다고 하였다.
추사가 담계선생을 존경하여 그의 저술과 글씨를 수집한다는 소문을 듣자
선생은 그가 존경했던 송나라 문인 소동파의 저술과 글씨를
추사에게 모조리 보여주었다고 하였다.
소동파도 한때는 해주로 유배를 당한 사람이었다.
그는 어린 아들이 그가 유배당한 그 먼 곳 까지 찾아오자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언송도라는 그림과 글씨를 써 선물하였다고 하였다.
어찌보면 소동파와 어린 아들 간에 주고받은 언송도와
추사와 제자 이상적과 주고 받은 세한도는
부자간의 정이 뭔지.스승과 제자간의 정과 의리가 뭔지를
생각나는 그런 작품인데
원래 목수 제 집 못 고친다더니 내가 꼭 그 꼴이었다.
한평생 노가다와 더부러 살았다면서 날씨가 추워지니
오늘은 유리창마다 새어들어 오는 찬 공기를 막느라
아침 한나절을 다 허비했는데
그나마 새로운 전자여권을 받고보니
가까운 일본이라도 한번 다녀올까 하는 욕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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