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몇 학번입니까

커피앤레인 2016. 2. 26. 17:52

 

 

 

 

 

 

 

몇 학번입니까

 

 

 

 

 

 

서울에 귀천이 있다면 부산엔 강나루가 있었다.

귀천이나 강나루나 사실 닮은 점이 너무 많았다.

서울 귀천엔 천상병 시인이 있었고 부산 강나루엔 김씨의 허리띠로 유명한 이상개 시인이 있었다.

천상병 시인의 아내는 목순옥이었고 이상개 시인의 아내는 목서분이었다.

두 분 다 목씨였다.

두 곳은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내노라 하는 문화 예술인들이 제집 드나들듯이 드나든 곳이었다.

영화배우는 물론이고 영화감독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분들이었다.

그 중에도 유현목 영화감독/김사겸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서예가 율관 변창헌 선생/그리고  얼마 전에 작고하신

박응석 시인의 흔적은 유별났다.

 

언젠가 서울에 간김에 인사동에 들렸다 귀천을 갔더니 내가 예전에 보았던 그 집은 아니었다.

하지만 부산은 여전했다.

때묻은 낡은 벽지며 어둠침침한 막대형광등이며 주모까지 전혀 변한게 없었다.

변한게 있다면 주모의 머리카락만 하얗게 쉬어있었다.

 

 

올만에 배국장이 왔나보다.

전화를 때렸다.

-형님 어딥니까?

-나 국제시장이다.와?

-거기서 뭐하는데요?

-수미정에서 향숙이하고 술 한잔 하고 있다.

-수미정이 오덴데요?마 이리로 오이소. 아니면 내가 갈까요?

-아이다.거기 있으라.내 곧 갈게.

수미정은 국제시장 족발골목 근처에 있었다.거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깡통시장 야시장 골목이었다.

향숙인 죽은 저거 오라버니 돌아온 것 처럼 무척 반가와했는데

술이 한잔 들어가자 오빠..........나 천년지기 좀 가르쳐주라.

이번에 계 모임때 이 노래 부를란다.

-계? 니 천년지기 저번에 가르쳐줬다아이가?

-아따메 울 오라버니 왜 그리해사여...

그 좋은 목소리로 쪼매만 더 갈쳐줘봐요

-알았다.

내가 지쳐있을 때 내가 울고 있을 때 위로가 되어준 친구..........너는 나의 힘이야.....

 

목소리를 깔고 몇 번 가르쳐준 다음 나 간데이 .........하고 강나루에 왔더니

배국장이 계장 두 명을 데리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데 대개는 다 아는 인물들이었는데 오늘따라 전혀 낯이 설었다.

-야 .인사부터 해라.큰 형님이다.

하더니 지부터 인사를 넙죽했다.

한데 공교롭게도 둘 다 조씨 성을 가진 친구들이었다.

한 사람은 함안 조씨였는데 또 한 명은 본이 좀 생소했다.

암튼 그건 그렇고 배국장이 대뜸 형님 몇 학번입니까?하고 뜬금없이 물었다.

-몇 학번?갑자기 학번은 와?

-아따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 이 말입니다.

-아이고.문둥아 .요새는 나이도 학번으로 말하나?

전에는 몇 학년 몇 반이라고 했는데 ...............

초등학교에서 이젠 대학교로 진학했는가베.

 

-그건그렇고 배국장.

-예.형님.

-니 노래 실력이 좀 늘었는갑던데 이동원의 향수 함 불러봐라.

-향수 부르고 난 뒤 그럼 형님 섬진강 한 곡 부탁합니더이

-며칠 전에 고청장이 와서 사람을 괴롭히더니 그 놈의 섬진강을 또 불러야하나?

-그 곡 너무 좋데예

사실 섬진강이라는 곡은 시도 아름답지만 곡도 참 아름다웠다.

하동 출신인 정공채 시인이 시를 썼고 강창식 선생이 곡을 붙인 가곡인데

어느날 부터 나의 18번이 되었다.

 

산두고 숲을 두고 복사꽃 피는 마을도 돌아

인정도 고운 전라도 땅 그 들판 비단결 굽이굽이 감돌며

하늘에 흰구름 누비듯 흰구름 누비듯.........

흘러흘러 남으로 가는 고운 섬진강

내 마음 내사랑 이 강물 물빛되어

당신을 당신을 떠올리네

 

꿈꾸듯 졸면서 송아지 우는 강언덕 멀리

전라도 지나 경상도 땅 그 하동 끼고서 가는 강물아

세월이 구름이 흐르듯 구름이 흐르듯..............

남실남실 남으로 빛도 고운 섬진강

내기쁨 내섦음 이 강물 물길되어

당신께 당신께 안기리라

 

섬진강은 전북 진안에서 출발하여 임실과 남원을 거쳐

구례와 하동을 지나 남해안으로 흘러 흘러들어갔다.

특히 섬진강 하동재첩은 유명했다.유명한건 재첩만은 아니었다.

일반사람들은 잘 모를지 모르지만 황어와 은어가 또 한 입맛을 했다.

그나저나 지금쯤 하동 배밭 십리길과 광양 매실 마을이 온통 하얗게 변할낀데.....

또 궁뎅이가 덩실덩실하네.우야믄 좋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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