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코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경계란 무엇일까?
삶과 죽음이 가까운데 도대체 생(生)과 사(死)의 경계는 어디쯤 있는걸까.
몇주 전 박응석 시인이 세상을 버리더니 엊그저께는 임수생 시인이 또 세상을 떠났다.
오랜 세월동안 호형호제하며 술잔을 기우리며 정을 나누었던 사이였는데
몇달 전 삼계탕을 대접하겠다며
기어이 손목을 끌어당기더니 그게 박선생과 마지막 점심일줄이야..........
왠 놈의 천수가 그리도 짧단말인가.
오늘 밤은 내가 존경하고 가깝게 지내는 김사겸 영화감독님의 부인이 돌아가셨단다.
얼마 전부터 면역성이 떨어져 한동안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더니
그새 기어이 운명을 달리하셨나보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언젠가는 다들 가야 할 길이겠지만
그래도 떠나 보내야하는 사람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평소 열렬한 천주교인이다 보니 남보다 더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간병도 서슴치 않으셨는데 돌보는 환자는 오히려 멀쩡한데 도리어 간병인이 어디론가 가시다니 ........
세상사 믿을게 하나도 없었다.
가끔이지만 크리스피 크림 도너츠를 너무 좋아하셔서 감독님이 시내에 나오시면
두 박스를 꼭꼭 챙겨드렸는데 그 일도 이젠 더 할 수가 없게되었나보다.
좀 더 오래오래 사 드리고 싶었는데.............
이럴 때 사람은 참 냉정한가보다.
가신 분은 어쩔 수 없지만 감독님은 또 어떻게 혼자 남은 생애를 보내실지...........
그게 또 걱정이었다.
누군가 이별이라는 단어에는 정(情)과 한(恨)이 녹아있다고 했다.
한데 정(情)은 아름다운 것이나 좋은 것만 아니라
미운 것도 노여움도 공존하는 초월적인 사랑이라고 했고
한(恨) 역시 억울하고 서글픈 것만 아니라
무언가 가볍게 저버릴 수 없는 애달픔을 간직한 뉘우침이라고 했다.
해서 지나간 세월 못다 이룬 정(情)이
헤어진 사람들의 가슴에 한(恨)으로 남아 앙금처럼 그렇게 가라앉는가 보다.
그나저나 다들 왜 그렇게 빨리 가는지?또 어디로 그리 바삐 가야만 하는지?
물론 나도 언젠가는 그 길을 따라 가겠지만.........
비가 오려나보다. 점점 습기가 묻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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