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부치지 않는 편지

커피앤레인 2016. 5. 27. 14:17

 

그림/안기태 화백

 

 

부치지 않는 편지

 

 

 

사람이나 컴퓨터나 비슷한가 보다.

팬 돌아가는 소리가 심상찮더니 끝내 퍼져버렸다.

아침 운동을 마치고 오는 길인데 몽베르모텔 허사장이 어딜 그리 혼자만 돌아다니느냐고 큰소리를 마구 질러댔다.

아이고마! 운동도 내 맘대로 못하나?

그는 요즘 무척 바쁜가보다.

색소폰연주회를 위하여 동호인들과 일주일에 두 세번 연습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했다.

-그나저나 컴퓨터 본체 안쓰는 것 있으면 하나 주소

-뭐 할려고요?

-저 놈이 내하고는 말도 하기 싫다며 완전히 퍼져버렸네

-그래요? 그럼 본체만 가져와 보소.내가 고쳐줄게

-엥!고칠 줄 알아요?

-아이고.객실이 40개인데 컴퓨터 고칠줄 모르면 장사를 어떻게 합니까?

그의 방은 그야말로 고물상이었다.부품들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았다.

그는 며칠간만 시간을 주면 깨끗이 고쳐주겠다고 하였다.

-아이고!이렇게 고마울 때가 ......내 이쁜 여인네들 오면 술 한잔 살게요.

그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본체와 자판기와 함께 우퍼스피커까지 보내주었다.

고마워이 ................

 

엊그제께는 부산에서 발행되는 국제신문 13면에 내가 아끼는 기인 권태원 시인의 인터뷰가

대문짝만하게 나왔다.

박창희 대기자의 색깔있는 인터뷰/시인. 권태원의 아침편지..........라는 제목으로 13면 한 면 전체를

차지했다.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대나무 밭에서 찍은 상판대기가 걸작이었다.

어렸을때 조실부모하고 법당에 버려진 탓인지 세례명이 프란치스코인가 했는데

스님들이 입고다니는 법복을 자주 입고 다니다보니 알게모르게 보살들이 큰 스님 오신양 시주를 했다.

누군가 우리시대 3대 기인이 천상병 시인.중광 스님.이외수 소설가라고 했다.

한데 또 한 명의 기인이 나타났다. 

하긴 술이 밥인지 밥이 술인지는 몰라도 맥주를 벌컥벌컥 들어마시는 폼이 영낙없는 노숙자다.

특히 배가 고픈 날은 안주를 아주 게걸스럽게 먹었다.

그래도 의리는 있는 놈이었다. 때때로 진실 반 소설반 때문에 이 놈을 당혹스럽게 해서 그렇지 정도 있고 술도 잘 샀다.

난 그런 놈을 아우랍시고 라면 달라면 라면 주고 밥 달라하면 밥도 주었다.

불광불급/不狂不及(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이라 했던가.

13년째 아침의 편지를 썼다고 했는데 내 블로그에도 자주 들렸다.

인터뷰를 하면서 그는 눈물로 사랑으로 시를 쓴다고 했다.

해서, 그런지 배고픔보다 글 안 써질 때가 제일 우울하다고 했다.

강동수 논설위원겸 소설가의 등단작 몽유시인을 위한 변명(1994년)이

바로 이 권태원 시인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었다.

아무튼  그의 시에는 우리 시대의 눈물이 있었고 슬픔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사라졌지만 완월동 사창가에서 살았던 여인네들의 그 한많은 사랑도 그에게는 고상이라는 가면을 쓰고 

시로 변신했다.

그의 詩 부치지 않는 편지중  일부만 소개하겠다.

 

부치지 않는 편지 

 

                권 태 원  

 

그대를 기다리다가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순다

기도하다가 죽어버리자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너를 기다렸다

잠들기 전에 잠들기 전에

사랑할 수 없는 것들을 사랑하자

용서할 수 없는 것들을 다시 한 번 용서하자

                               -부치지 않는 편지

권태원(www.mariasarang.net/kwon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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