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홍티 마을과 낙동강 강변길

커피앤레인 2018. 4. 21. 13:05

 

 

 

 

홍티 마을과 낙동강 강변길

 

 

 

 

지형이 무지개와 닮았다하여 홍티마을이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예전엔 낙동강 하구에서 나오는 김의 질이 상당히 좋아 아주 고가에 팔렸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김 생산도 거의 중단한 것 같고 소금은 아예 생산을 하지않았다.

들리는 말로는 아주 오래전엔 소금을 만드느라 집집마다 굴뚝에 연기가 자욱하였다 하였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었다.

그만큼 세월도 많이 흘렀고 산업단지가 되면서 공장들이 수십년동안 우후죽순으로 들어섰기 때문에

현재는 산비탈 언덕배기에 겨우 몇 집만  마을을 지키고 있을뿐 예전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놈이 어렸을 때만해도 아미산을 경계로 홍티마을. 장림.신평.낫개.다대포항구가 좌우로 옹기종기 모여 촌락을 이루었는데

세월은 못속이는지 곳곳에 아파트들이 즐비했다.

때문에 지 잘난 맛에 사는지 저마다 내가 잘사느니 네가 잘사느니하고

유명브랜드 아파트들이 서로 하늘을 항해 두 손을 쭉쭉 뻗었는데

특히 이 이 지역에서 만든 소금을 자염이라고 하여 전국 최고로 여겼다고 한다.

 자염은 천일염과 달리 바닷물을 퍼서

가마솥 같은 곳에 끌여서 만든 소금을 자염이라고 하였는데

 지금은 자염을 만든 가마솥도 구경하기 힘들었다.

가능하면 사하구청에서 옛 것을 복원하는 차원에서라도 그 어딘가에 흔적이라도 복원하면 어떨지?

모르겠다.

이미 기네스북에도 올랐지만 오늘은 오랜 겨울잠을 깨고 다대포 야간 분수대 개장식이 있는 날이라고

여기저기 현수막이 펄럭였는데

부산지리를 잘 모르는 분들은 해운대만 알았지 사실 다대포는 익히 알지 못했다.

한데 지금은 노포동에서 다대포해수욕장 까지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는다고 하였다.

다대포는 일출과 일몰이 특히 일품이었다.

오랜동안 황폐한 해수욕장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전혀 다른 용도로 변경될 뻔 했다는데  다대포매립 반대 주민 대책위원회와

부산환경운연합이 합동으로 저지하여 오늘의 다대포 해수욕장으로 변신을 했는데  조경을 너무 잘한 탓인지 

 여러 기관으로 부터 대상을 많아 받다고 하였다.

하긴  꽤 까탈스러운 이 놈의 눈으로 봐도 

다대포를 참 잘살렸구나 ......하고 여러번 감탄 아닌 감탄을 했는데

요근래 자주 산책코스로 다대포를 찾았지만 아직 몰운대까지는 올라가보지 못했다.

그동안 얼마나 변했는지? 참 궁금했다.

아무튼 저녁무렵이면 해가 구름속으로 빠진다하여 이 지역을 몰운대(沒雲臺)라고 하였는데 몰운대에는 다대포 객사도 있었고 

임진왜란때 장렬히 순국한 다대첨사 윤흥신과 다대군민들의 충절을 기리는 윤공단(尹公壇)도 몰운대에서

다대포항 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비석군과 함께 윤공단을 볼 수 있었다.

통칭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신평 역에서 내려 200m 정도 서쪽으로 걸으면 강변산책길이 나왔는데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지점이다보니 팔뚝만한 숭어들이 자주 낚시바늘에 걸리는걸 자주 볼 수 있었다.

 희안하게도 숭어란 놈은 미끼가 필요없었다.

금박지 같은 걸 몇개 낚시 줄에 달아놓으면 호기심 많은 이 놈들이 그걸 건드리다 강태공들의 낚시밥이 되어 

그날의 술안주로 등장했는데 강변산책길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다대포까지 산책길과 자전거 도로가 나왔고

우측으로 올라가면 낙동강 하구둑과 을숙도가 연결되었다.

신평에서 다대포까지는 성인 걸음으로 거의 1시간 -1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한번쯤 이 길을  걸으면서 철새를 구경하는 것도 굉장히 추억거리가 되겠지만 아직은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지  

나같이 혼자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그야말로  안성마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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