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자유 그리고 이슬처럼 별처럼
시와 自由는 1982년도에 창간호를 펴낸 이후에 2018년 까지 장장 36년간을 버텨온
부산 최장수 동인지였다.
1982년 8월24일 부산광복동 보리수 다방에서 당대 최고의 시인이라는 김석규.김영준.박응석.
박태문.이해웅.임수생 선생등이 주축이 되어 오늘날까지 무려 38집을 낼 정도로
그 생명력이 탄탄했다.
그 이후에 이형기.김창근 김철.이상개 선생등이 합류하며 그 저변을 더욱 확대하였지만
세월 앞에 장사없다 하듯이 1992년 12월24일 박태문 시인의 타계를 필두로 한 사람 두 사람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그 먼길을 홀로 떠나셨다.
나이가 들면서 세월이 예전같지 않는지 더러는 탈퇴도 했지만 지금은 김석규.김창근.정재필.
이상개선생등이 그 명맥을 여전히 유지했는데 때마침 38집이 나왔나보다.
-따끈따끈하다.함 읽어보소 .....하고 송제 이상개 선생 부인인 목여사가 부군보다 더
열심히 책을 나누어주었다.
저녁무렵 혼자 산책을 하는데 권태원 시인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하도 기인이라 때로는 가깝게 지내다가도 때로는 내 니 언제봤노 하듯이 했지만
사람의 정이란게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게 아닌가보다.
-형님. 강나루에 가서 맥주나 한잡 하입시더......하더니 어디서 돈이 좀 생겼는지
5만원권 한 장을 목여사에게 안겼다.
때마침 석제 안기태 화백이 그린 시도 아닌 것이 ......展에 새 작품을 가져왔나보다.
-여기 놓는게 좋나 저기 놓는게 좋나하면서 벽에 못질을 하고 있었다.
권태원 시인은 17번째 시집 이슬처럼 별처럼을 주면서
-형님 여기서 20점만 좀 골라주이소.다음주에 시화전을 할려고 합니다.하며 숙제를 안겼다.
-니가 하지 와 나를 여기다 끼어넣노? 했지만 내말은 귓구멍에도 들어오지 않는가보다.
이래저래 어울리다보니 고청장도 오고 배국장도 오고 정봉길 교수도 왔다.
다들 이 바닥에서 풍류라하면 나 빠지면 섭하지 하는 인물들이다 보니 자연히 노랫가락이 나오고 젓가락 장단이
춤을 췄다.
원래 톱가수는 맨 나중에 나온다 했으니
-형님은 맨 나중에 부르이소 . 그 와 형님 잘 부르는 섬진강 있잖아요.그것 꼭 듣고 싶습니다.하고
배국장과 고청장이 바람을 또 실실 넣었다.
10평도 채 안되는 선술집이지만 이런 곳에서 가곡을 즐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느 콘서트보다
그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한데 이럴 때 꼭 골든벨을 치는 친구가 있었다.
현역에서는 이미 물러났지만 건축계에서 꽤 오래동안 잔뼈가 굵은 친구가 오늘밤은 지가 쏜다며
테이블 술값을 혼자 다 짊어졌다.
원래 세월이나 시간은 인간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12시가 다 지났나보다.
선미네도 불이 꺼지고 누리에도 불이 꺼졌다.
그래도 아직은 정신이 살아있나보다.
시집 2권을 꼭 껴안고 내 집에 돌아오니 윗층도 아랫층도 모두 꿈나라로 가버렸는지 옆집 개만
이 놈을 반갑게 맞이했다.
詩와 自由 /38집
가을 수작(酬酌)
이 상 개
잠이 덜 깬 단풍잎들이 떠내려 와
물가에 모여앉아 치장을 끝낼 즈음
개울물소리 뒤집어 쓴 매란 놈이
날아가는 산 메아리 낚아챈다.
무슨 꿍꿍이수작을 꾸미는 걸까?
가을 산허리에 상현달 매달고는.
밤 지하철 안에서
정 재 필
세상 모든 것 날개 꺽이면 추락하여
고비늙다 땅 속에 묻힌다
내일이면 영구차에 실릴
한 때 잘나가던 친구 영안실을 찾았다
돌아가는 밤늦은 지하철 안
지친 표정으로 어디론가 실려 가는 승객들
어쩌다 내지르는 취객의 고함 소리도
궤도차의 굉음에 열없이 묻힌다
어둠 속 차창 밖으로 문득 스치는
내일이면 땅 속에 묻힐 친구의 생전 모습
먼저 가게 친구여
지금 나도 커다란 철제 관 속에 담겨
언젠가 돌아갈 땅 속 헤매고 있는 것이니
추문
김 석 규
옛날에 어른들 하시는 말씀
남자는 모름지기 세 끝을 조심해야 한다고
세 끝이란 혀끝 손끝 좆끝으로
혀끝으로 하면 성희롱이 되고
손끝으로 하면 성추행이 되고
좆끝으로 하면 성폭행이 되고
무슨 사변인지 이제서야 불거져
나도요 나도요 하고 봇물처럼 터져나오는데
빼도 박도 못할 이 낭패를 다 어찌한담
납골당에서
김 창 근
용이 형이 끝내 저세상으로 갔다
요양병원 장례식장에서 온 사흘을 머물다
훌쩍 떠나고 만 것이다
영락공원에서 한줌 재로 변한 형은
낯선 절 납골당에 안치되었는데
유택이랍시고 자리잡은 곳
이웃이랍시고 가지런히 텃세 부리는 동네
벌써부터 줄 세우기에 바빠
앞뒤 좌우부터 살피는 통에
이승에 두고 온 질서 같은 것 다 부질없는 곳
두고 떠나는 사람 발길 무거워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하지만
이미 유명을 달리한 바람만 스산한데
합장배례로 낯선 수문장이 된 노스님 홀로 남은 곳
인생사 다 그런 거라며 무심한 해 그림자
밟고 돌아서는 발길만 무거운데
이슬처럼 별처럼/17번째 시집
권 태 원
길을 걸으면
길을 걸으면
아무도 없는
길을 걸으면
눈물이 난다 ,그저 눈물만 난다
보이지 않는 하늘
갈 곳도 없고
같이 갈 사람도 없다
어제까지 따라 다니던
햇 빛 한 움큼마저
나를 떠난 오늘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나
누구를 만나야 하나
살아 갈수록
나의 별은
안으로 안으로 떨어지는데
아무도 없는
길을 걸으면
미안해진다, 자꾸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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