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2

아름다운 집짓기 26/ 만남

커피앤레인 2006. 1. 11. 17:26

 

어느 날 민학회 사무국장인 한근이가 느닷없이 사무실로 찾아와

..형 뭐좀 도와줘 .............................한다.

.뭔 일인데....

.우리 민학회 회원인데 유명한 춤꾼이야 ...

.그래서...

.시골에 논이 좀 있는데 그걸 대지로 바꾸려는데 아무래도 형이 좀 도와줘야할것같아서 찾아왔는데 괜찮지.......하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아이고 골치 아픈것 또 하나 들고 왔구나 ........하고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 했지만 차마 얼굴표정 마저 찡그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실제로 이런 일은 일만 복잡하고 시간만 많이 낭비하지 내겐 전혀 도움이 되지않는 일이다.

그러나 어쪄라 .....

아는 후배가 부탁하는걸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 약속장소를 정했더니 아담한 체구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상당한 미인이 생글거리며 나타났다.

당시만 해도 나는 한국춤이나 사물놀이는 별로 큰 관심이 갖지않았는데 알고보니 영남춤의 맥을 이을정도로 이 바닥에선 상당히 유명한 여자였다.

커피를 마시면서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하고 물었더니 국도변에 대대로 물려받은 큰 논이 하나있는데 그걸 대지로 바꾸어 우리춤 전수관을 짓고 싶다고 하였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논을 대지를 바꾸려면 먼저 농지전용허가를 얻어야하는데 그게 그리 쉬운게 아니다.

그리고 국도와 접한 땅이 50m 이내에 있으면 어느 류의 건축허가가 가능한지도 알아봐야한다.

뿐만아니라 논에서 대지가 되려면 어차피 형질도 변경해야 되기 때문에 개량허가도 받아야하고 요즘같이 환경에 대해 민감한 때는 정화조문제도 결코 소홀히 할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러한 모든 허가사항을 다 득하려면 현장에 여러번 답사도 해야하고 사진도 찍어야하고 평면도는 물론이고 건축에 따른 기초도면도 그려주어야한다.

 

부탁하는사람의 입장은 쉬워보이지만 실제 일하는 사람은 한번 움직일 때마다 왕복 10시간 가까운 시간을 빼았겨야 할 뿐만아니라 기초 디자인과 설계도 해야하고 서류도 갖춰야하고 군 담당자와 여러번 접촉을 하며 의견을 조율도 해야할 만큼 번거로운 일이다.

 

그러나 도와주겠다고 약속을 한 이상 날짜를 정하여 일단 길을 나서기로 하고 그녀의 차를 타고 3시간을 달려갔더니 정말로 국도변에 크다란 논이 반쯤 흙을 덮은체  풀이 수두룩 자라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허허벌판과 같은 현장을 한바퀴 돌아나오자 저녁을 사겠다고 기어이 횟집으로 초대했다.

 

알다시피 밥은 편한 사람하고 먹어야 제일 밥맛이 나는 법인데 거북한 자리나 너무 미인하고 앉아 있으면 모양새는 그럴듯해보여도 실제로  밥 맛은 별로없다.

원래 밥 맛은 약간 못생긴듯한 사람들이 더 맛있게 먹는 법이다.

 

아무튼 한국춤 전수관에 걸맞도록 몇 주 동안 고민하여 디자인을 하여 기초도면을 그려주었더니 도면외에 이것저것 부수되는 서류를 더 보완해 달라고 군청담당자가 전화를 쉴새없이 해댔다.

결국 모든 서류를 완성하여 허가를 득하여 논에서 대지로 지목변경을 하니 서너달이 나도모르게 눈 깜작할 사이 지나가버렸다. 

 

실제로 일해보면 논에서 대지로 바꾸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쉽지않다,

왜냐하면 논 값과 대지 값이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익을 노려 투기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농지전용허가란걸 그리 쉽게 내어줄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그 여인은 설마 그런 이유때문에 내게 부탁한 건 아니라고 보지만 5-6년이 지났는데도 여지껏 집을 짓지 않는 것을 보면 그동안 남몰래 형편이 어려워진건지 아니면 그냥 대지로 바꾸었다가 다른 사람들 처럼 그녀 역시 다른 용도로 사용하려고 그랬는지는 지금도 알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