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2

아름다운 집짓기34/ 억새풀과 이사

커피앤레인 2006. 1. 26. 20:10

 

집에서 나와 비봉산을 거쳐 조금만 걸어가면 승학산 밑 자락이 나온다.

승학산은 억새풀로 유명한 곳이다.

 

정상에서 임도 까지 거의 성인 키만큼 자란 억새풀 사이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늦 가을의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노래를 부르며 산을 내려오는 등산객들과 자주 마주쳤던 정겨운 풍경도 이젠 머잖아 이별을 해야 할 것 같다.

 

마침내 결단을 내려 10여년 이상 살았던 정든 곳을 떠나 새거주지로 이사를 하려니 왠지 산이 먼저 가슴에 와 닿아 마음이 아프다.

 

항상 그렇듯이 곁에 있을땐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들도 막상 그 자리를 벗어나거나 어디론가 훌쩍 가버린다고 생각하니 서운한게 한두가지가 아닌가보다.

 

사시사철 작은 몸뚱아리 하나를 감싸주던 집이란 것도 아쉽기는 매한가지다.

 

집을 짓거나 살땐 천년만년 거기에 터를 딱고 살 것 같다가도 막상 생각지 않은 일이 생기면 미련없이 떠나야 하는 게 집이라는 구조물이다보니 아무리 정이 들고 손 때가 많이 묻었다 하더래도  집은 사람처럼 그렇게 자유롭게 그 자리를 벗어 나질 못하다보니 막상 이사를 가야한다고 결정하니 생각보다 더 만감이 교차한다.

 

괜히 어렸을 때 놀았던 마을도 힐끗힐끗 쳐다보고 호연지기를 기른다고 산을 가로지르며 뛰어 놀았던 옛 동산을 굳이 가보려 하는 것도 그런 심란함의 어떤 편린인가보다.

 

때론 늘 같이 있던 사람과 본의 아니게 헤어지거나  아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을 가버리고 나면  장현의 미련만큼이나 공허하고 가슴 아프고 씨린게 집이 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사실 집은 어떤 의미에선 인간의 삶 그자체인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흔적이 있고 애환이 서려 있는 기록장 같은 집은 어쩌면  자신의 삶을 송두리체 간직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새주인을 맞이할 채비를 서둘러야 할게다.

벽지도 바르고 장판도 새로 깔고 ...

 

(물론 그의 의지나 감정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집은 그렇게 순환의 법칙에 충실할게다..........................................)

 

만에 하나

그도 느낄 수 있고 말할 수있다면

 먼 길을 떠난 주인을 기다리는 개처럼 그렇게 밤새 웅크리고 앉아 돌아오지 않는 옛 주인을 기다리며 끙끙거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