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2

아름다운 집 짓기 40/ 예술가의 집

커피앤레인 2006. 3. 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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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집은 의외로 소박하거나 담백하다.

 

나무로 만든 계단이 삐거덕 거리는 적산가옥에서 수년째 살고 있는 송제선생의 집은 겨울에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어야 할 정도로 춥다.

간혹 볼일이 있어 선생의 집에 들르면 이곳에서 어떻게 사나 싶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불편함을 모르고 사는 사람처럼 태연하다.

 

송제선생이 쓴 김씨의 허리띠는 유명하다.

그는 시인이다.

 

안의에서 거창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덕유산 산자락 아래 용추계곡에서 선대로 부터 살았다는 무진선생의 집이 있다.

그의 집도 별반 송제선생의 집이나 다를바가 없다.

그는 유년시절에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박사 앞에서 그림을 그려 신동이란 소리까지 들은 인물인데 어느 겨울날

공사관계로 함양에 들린 김에 선생의 집에 갔더니 엄동설한인데도 방이 얼음장처럼 찼다.

하도 추워 왜 불기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돈이 없어 보일러를 놓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선생은 그런 환경에 이미 익숙하였는지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해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추위를 타는 그를 보고 이상한 눈빛으로 껄껄하고 웃었다.

 

사람이 환경을 만드는지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암튼 대단한 분들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난방과 통풍문제인데

요즘은 보일러 시설이 잘 되어서 있어서 그렇게 큰 문제가 없지만

예전에만해도 방에 군불을 지피려면

아궁이 깊숙히 까지 장작을 밀어넣고 불을 때야 했다.

때문에 가을이 되면 남정네들은 너나없이 깊은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는 것이 일과였다.

 

아침일찍 밥을 먹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나무를 하러 가면 오후 늦게야 지게에 가득 한 짐을 지고들 내려왔는데 부지런한 집은 겨우내내 땔감 걱정이 없었지만 남정네가 게으른 집은 여인네들이 산에 올라가 떨어진 소나무 잎을 긁어 오기도 하고 죽은 나무 밑둥치를 파와서 군불을 때거나 땔감을 사용하였다.

 

물론 지금은 한낮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요즘처럼 유가가 장난이 아닌 때는 왠지 불 때는 옛 아궁이가 그리워지는건 옛날에 대한 단순한 향수만은 아닌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모두들 현대식 난방시설을 방바닥에 깐 덕에 이젠 기름이나 가스가 없으면

영락없이 냉방신세가 되어 버리지만 그렇다고 옛 아궁이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땔감을 구하기도 힘들거니와 이미 집 구조가 그걸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손수 우리 집 짓는 이야기를 쓴 정호경신부님은 시골집엔 방 하나쯤은 아궁이에 불을 지필 수 있는 방을 만들어야한다고 했는데 참 좋은 제안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쉬운 문제만은 아닐 것 같다

 

땔감은 고사하고 우리 옛 전통방식대로 구들을 놓을줄 아는 사람도 이젠 거의 사라져버린게 현실이다.

 

예전에는 나이 많은 분들중 구들일을 해본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만 이젠 시골에가도 그런 분들 만나기가 쉽지않다.

 

어쩌면 문명이란 참 묘한 것인지도 모른다.

 

무조건 발전한다고 쌍수들고 좋아라할 처지는 아닌 것 같다.

때론 옛것이 더 좋을 때가 있다.

 

그가 잘 아는 영화감독중 한 분은 아직도 휴대폰이 없다.

사람들이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느냐고 하면 그는 오히려 휴대폰을 가진 사람들이 더 불편할 것 같다고 측은해한다.

 

하긴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벨소리 때문에 모처럼 분위기 잡고 뭐 좀 할려면 와그리 성가시게 구는지 .................................껄껄껄

 

예술가는 어쩌면 이 땅의 집보다 마음의 집을 지어가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괜히 속된 인간의 눈으로 그들의 집을 폄하다보면 그들 내면속에 지어놓은 진짜 아름다운 집을 놓칠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은 눈에 보이는 것만 결코 아닌 것 같다.

보이지 않은 곳에 있는 더 아름다운 그 무엇을 찾아 그들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막사발을 굽고 춤을 추며 노래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