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엔 봄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하늘이 맑고 청명하다.
갑자기 낯선곳으로 이사를 해서 그런지 마음이 착잡하고 일이 손에 안잡히더니
며칠 지나니까 이젠 새벽에 일어나도 그렇게 서글퍼지지는 않는다.
환경이 인간을 만드는 것인지 인간이 환경을 따라 가는 것인지는 몰라도 변화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오래동안 떨어져 있던 아내에게서 올만에 전화가 왔다.
어떻게 혼자서 이사를 했느냐고 ...
무척 안쓰러워 하는 눈치다.(진작 전화좀하지 말만 ㅋㅋ)
그럼 어떡해 ..........혼자라도 해야지
(마치 득도한 사람처럼 그가 들어도 무심이 깊게 배인 대답이다.)
저녁엔 자명심이라는 보살이 보고싶다고 전화가 왔다.
한동안 얼굴을 볼 수 없었는데 아마도 토굴에 가 있었던 모양이다.
60넘게 혼자 살아서 그런지 아직도 피부가 매끄럽고 팽팽하다.
사무실을 대충 정리하고 강나루에 들어서니 자명심이 낯선 스님과 언필칭 곡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미 전주가 있었는지 얼굴이 벌겋다.
건너편에는 서예가 이신 율관 선생이 서 박사랑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하면서 노래를 하고 있었다.
역시 가무는 즐거운거다.
코미디언인 김성환씨 노래처럼 술은 끊어야지 끊어야지하면서도 또 먹게 되는게 술인데
속이 상해서 먹고 기분 좋아서 먹고 반가워서 마시고 슬퍼서 마시고 .....그러다보니 자연 술을 안 먹는 날은 뭐가 좀 빠진것 같이 심심하다.(그렇다고 알콜 중독자는 아니어여...)
그는 한동안 술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
어렸을 때 그의 부친이 하도 술을 많이 마시는 걸 보고는 자기는 커서 절대 술을 안마시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부친은 당시 우체국에 근무하시면서 야구심판이셨는데 초기엔 우리나라 국가 대표선수일정도로 캣쳐로 이름을 꽤 날렸다고 한다.
그가 어렸을 때만해도 고교야구가 성행할때 였는데 야구경기가 있는 날은
의례껏 지는 팀은 지는대로 분하다고 술을 마시고 이긴팀은 이긴대로 술을 마시니 그의 부친 역시 그 자리를 피할 수 없었던지 늘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서 그런지 그는 술을 별로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느날 노가다를 하고 부터는 그도 술엔 이제 이력이 났는지 왠만해선 끄덕도 안한다.
그렇다고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하던소리 또하고 그러지는 않았다.
그건 그의 부친을 꼭 빼 닮았다.
그는 아무리 취해도 상하에 관계없이 상대방을 깍듯이 모셔 드리고 자기 집으로 가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다보니 마지막 뒷처리는 언제나 그의 차지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바닥에선 술매너 좋기로 소문이 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그도 집에만 오면 그 뒤는 아무것도 몰랐다.
바지는 어떻게 벗엇는지 지갑은 왜 꺼냈는지 .....
(누구처럼 술에 너무취해서 자기 아내차를 타고 가다가 집앞에 오자 자기 아내 차인줄도 모르고 어이 아줌마 여기 ,,,,,세워주세요 하면서 택시비를 꺼내주었다는데..... 그럴 정도는 아니다여 뭐ㅋㅋㅋ)
사실 술은 노가다 일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노가다라는 직업은 참 고달프면서 거친 직업이다.
자칫 잘못하면 사람이 떨어져 죽기도 하고 집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에 늘 긴장속에 살아야 한다.
때문에 관리하는 사람이나 노동을 하는 사람이나 스트레쓰 쌓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노가다말로 시마이(끝마무리) 하고 나면 의례껏 술한잔 하는게 이곳의 불문율 아닌 불문율이다.
그와 같이 작은 구멍가게 같은 사업체를 꾸려가면서 노가다 대장을 하려면 자주 그들과 어울려야한다.
술자리에서만 할 수 있는 얘기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런자리를 통해 비로소 그들의 애환을 듣기도 하고 기도 살려줘야 일이 순조롭다.
뿐만아니라 공사기간이 길땐 자주 회식도 해야한다.
저녁을 먹으면서 소주 한잔을 걸치다보면 자연히 2차로 노래방을 가게되는데 거기서 열이 나면 3차는 의례껏 그들이 잘 다니는 나이트로 끌려가게 된다.
그럴때 미꾸라지 처럼 살짝 빠져 나가면 흥도 깨어버릴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매끄럽지 못하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라도 같이 가서 놀아주기도 하고 대장이 돈도 내어 주어야 한다.
원래 노가다 현장엔 남자만 있는 게 아니라 여자도 꽤 많다.
(물론 다들 뒷일 하는 사람들이지만 ....)
이럴땐 남자는 쪽도 못쓴다. 여자가 오야지(주인)다.
이 날만은 그들을 위하여 사장이라도 팬서비스를 해야한다.
(여자가 편해야 세상이 다 편하다 하지 않는가...)
그들이 노래 부르라면 노래 부르고 술을 마시라면 술을 마시고 ........그래야 판이 안깨진다.
그러니 술을 못마시거나 노래를 못부르면 흥을 깨기 십상이기 때문에 적어도 그들이 좋아하는 몇곡은 언제나 가슴속에 숨겨둬야한다.
(자옥아라던지 /춘자야 / 사랑은 나비인가봐 / 동행 / 당신도 울고 있네요 / 등등.....)
기분이나면 기분이 나는대로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달아오르는 대로 노래를 적절히 불러야지
한 고상떤다고 동심초라던지 울밑에선 봉숭아야하고 노랠 부르면 눈치 없는게 인간이라고 하면서 구박만 받고 돈 도로 내줄테니 집에 가라고 하면서 낄낄거린다.
그러니 뿅짝은 필수고 간간히 발라드도 부를줄 알아야 울 사장님 짱이다.......하고 좋아라하며 술도 한잔 더 권한다.
(술 시중이 따로 없다여 .....)
이 바닥에서 그를 소리꾼으로 인정해주는 것은 순전히 먹고 살려고 노가다 바닥에서 갈고 딱은 실력 때문인데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노래를 언제부터했느냐........성악을 왜 전공 안하셨나 하는데 아이고 열불터져..............................
암튼 누군가 말하길 술은 술술 넘어간다고 술이라고 한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직까지 일꾼들하고 얼굴 붉히면서 싸우거나 다투어 보진 않은 것만도 참 감사한 일이다.
스님이 술잔을 건네면서 노가다얘기를 듣다가 이미 득도하셨네요 하고 공치사 아닌 공치사를 한다.
에이,,,몬 득도
(사실은 거의 생불 수준입니다여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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