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의 세계는 참 무궁무진하다
여자를 남자로 만들고 남자를 여자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컬러 사진을 흑백으로 만들뿐 아니라 이미 고인이 된 어머니 얼굴도 조그마한 사진 한장만 있으면 멋지게 살려낼 수 있다.
찢어진 사진도 감쪽같이 속이고 마치 아무일이 없었던 것 처럼 그렇게 만들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심지어는 못생긴 눈썹도 멋지게 만들어 주고 주름도 없애준다.
컴퓨터에서는 여성들이 잡티를 없애기 위하여 화장을 떡 칠 할 필요도 없으니 화장품 값도 절약되고 컴퓨터 붓으로 조금만 수정을 가하면 기미도 주름살도 잡티도 깜족같이 사라지게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컴퓨터에 빠지면 진짜 어느 것이 가상세계이며 어느 것이 현실세계인지조차 헷갈릴 때가 많다.
조그마한 캠 하나만 있으면 헤드셋으로 대화도 하고 얼굴도 보며 때론 짖궂은 장난도 할 수 있으니 자연 밤이 밤이 아니라 낮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예전에는 사람을 만나려면 어디 어디 커피숍에서 몇시에 만나자 하면서 전화를 걸고 칠보단장을 하고 한동안 수다를 떨어야 했지만 요즘은 그럴필요가 전혀없다.
메신저만 열어놓으면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메신저를 보며 대화도 하고 장난도 치고 사랑도 고백하고 그러다 열나면 남편 욕도 하고 마누라 흉도 보고 과장 부장 사장도 오징어 씹듯이 씹어 댈수가 있다.
그뿐만 아니다.
누군가 친절(?)하게도 종종 야한 동영상도 보내준다.
처음에는 누가 볼까봐 지레 겁을 먹고 얼른 지워버렸지만 이젠 왠만한걸 봐도 무덤덤하다.
그것도 하도 많이 보면 만성이 되는가보다
참 좋은 세상이라고 해야 할지 편리한 세상이라고 해야할지 .....
더 우스운 것은 아이들이 볼까 겁난다고 엄마들이 걱정하지만
왠만한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컴퓨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기 때문에
엄마의 그런 기우가 더 우스꽝스럽다.
어쩌면 그들은 우린 이미 다 알고 있어요 하고 속으로 감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건축에서 컴퓨터디자인이 도입된지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이젠 cad 니 3d니 하면서 거의 모든걸 입체적으로 보여줘야 수긍하는 세상이다보니
자연 짜집기 기술이 어느 경지에 이르렀는지 남의 작품을 표절하여 써 먹기도하고
스스로 하지 않은 공사를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포토폴리오를 만들어 돌아다니기도한다.
그러니 뭐가 숫 까마귀인지 뭐가 암까마귀인지조차도 구별하기가 힘든다.
그 뿐만 아니다.
컴퓨터를 너무 맹신한 나머지 그림속의 집이 마치 현실속의 집인양 착각을 하는데
컴퓨터가 아무리 훌륭해도 컴퓨터는 컴퓨터일 뿐이다.
컴퓨터로 작업한 사진속의 여자는 그 여자의 얼굴에 있는 여러가지 잡티를 훌륭하게 제거할 수있지만 그 여자의 실물을 바꾸지는 못하는 것 처럼 집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아름답게 3d 작업을 하고 꾸며도 질감을 현실 그대로 나타내지는 못한다.
벽지 하나 /전돌하나 /마루판 하나/까지도 왠만한 건 3d로 다 그릴수 있지만 100%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그 질감을 느끼게 해주지는 못한다.
때론 투박한 멋 때문에 때론 세련되고 깔금한 맛을 주기 위하여 디자이너가 마음속에 그리는 그 어떤 것을 컴퓨터가 읽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물론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보이지만 디자이너의 눈엔 전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왜냐하면 디테일한 그런 작은 차이 하나가 명품과 짝퉁을 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굳이 제도판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손으로 하는 작업과 기계가 만든 작업이 다르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컴퓨터에서 떠나지 못하는 것은 컴퓨터가 주는 편리성 때문이다.
물론 대세는 이미 기우려졌다.
그래도 그가 제도판에 대한 미련을 끝내 버리지 못하는 것은 예전에 그가 즐겨 했던 어떤 작업에 대한 단순한 향수만은 아니다.
마치 묵은 장맛이 더 깊은 맛이 있듯이 그도 그런 맛을 버리지 못해 여전히 고집스러울 정도로 제도판을 부둥켜 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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