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그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창문을 열었다.
봄비가 소리없이 또 내리고 있었다.
굳이 우산을 쓰지 않아도 좋을 만큼 봄비는 조용히 그렇게 내리고 있었다.
주 5일제 근무를 하고 부터 도시의 아침은 마치 텅빈 공간처럼 늘 휑하였다.
다들 게으른 아침 잠에 빠졌는지 거리가 한산하다.
하긴 일주일에 하루쯤은 게으른 것도 잘한 짓인지도 모른다.
간밤에
내일 날이 좋으면 산행을 가자고 약속을 했는데 아무래도 봄비가 길을 막을 것 같다.
거제도 현장에 내려간 후배가 며칠내로 디자인관계로 손님이 찾아갈 것이라고 귀뜸을 해 주었다.
참 반가운 소식이다.
그는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나 가스레인지 위에 작은 주전자를 올려놓았다.
물이 끓으면 오랜만에 코코아라도 한잔하면서 밀린 일들을 다시 챙겨보고 싶었다.
어느새 난로가 발갛게 달아올랐다.
불꽃이 너무 아름답다.
어떤 포만감 같은 넉넉함이 한순간이나마 기분을 편하게 한다.
그는 얼마전에 책을 한권썼다.
물론 아직은 세상에 얼굴울 내밀지는 못했지만 조만간 곧 출간 될 것이다.
이왕 내친김에 그는 장편소설도 한권 써 보고 싶어했다.
좀더 늙으면 컴퓨터만 하나 달랑들고 시골로 내려가 살 작정이다.
장르는 다르겠지만 창작을 하는 것이라면 소설을 쓰는 것도 참 재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어느 여인을 사랑하여 한 겨울내내 칩거한체 소설을 쓴 경험이 있었다.
그때 그는 소설이 생각보다 무척 어렵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플롯은 물론이지만 재미와 함께 세련되면서도 맛깔스럽게 표현하는 재주가 그리 쉽지 않았다.
더욱이 깊은 감동마저 느끼게하려면 소설이란게 장난이 아니었다.
어떤 것이던지 역시 경험이란 중요한 것이었다.
해보지 않고는 정말 모르는 일이었다.
막연하게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나 아마츄어적인 발상이었다.
어쩌면 사랑도 그런 아마추어리즘이 빚은 결과인지도 모른다.
진작 알았으면 저 인간하고 살지 않았을건데 ......하고 후회해봐야 그땐 열차가 떠난 후의 텅빈 기차역 같은 서글픔만 남아 사람을 더 초라하게 만든다.
사람이 사는 세상엔 어느 것 하나 그리 녹녹한게 없다.
저마다 다 노하우가 필요하고 숙련이 필요하고 고난도의 기술이 익혀져야 비로소 한 사람의 프로로서 자리매김을 받을 수 있는게 세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자리에서 그렇게 뛰어나지 못한 것은 그러한 노하우와 숙련과 고난도의 기술을 게을리했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에디슨이라는 사람이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는 1%의 영감은 있는데 99%의 노력이 부족한지도 모르겠다.
물이 이미 끓었나보다 .
소리가 요란하다.
달콤한 코코아라도 한잔 마시면서 99%의 여백을 찾아 오늘은 조용히 사색이라도 하며 자신을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봄비는 아무래도 그칠 마음이 없나 보다.
산행은 다음날로 미루자고 전화라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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