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아침에 쓰는 일기 93/겨울 등나무

커피앤레인 2006. 7. 6. 11:51

14488

겨울 등나무

 

 

 

 

 

 

날이 훤히 밝았지만 요근래는 마음의 병인지

일어나는 것도 그리 가뿐하지 않았다.

기도도 하는둥 마는둥

비몽사몽같고 집중도 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별 것 아닌데도 이렇게 마음이 공허한 것은

사람에 대한 배신감 같은게 느껴져서 그런가보다.'어느새 나도 나이가 든걸까?

 

조금 늦었지만 출근길을 서둘렀다.

삼실까지는 엎어지면 코 댈데니까

어슬렁 어슬렁 걸으며 좀전에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추스려봤다.

 

 

삶이 자꾸만 헛바퀴를 도는것만 같아

뭔가 휴식이 필요하구나하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났다.

하지만 떠나는 것도 마음이 편해야 즐거운데

영 그렇지 못했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원래 

 정신과 육체로 짜여져서 그런지

정신이 맑고 평안하면 육체가 고달프고

육체가 편안하면

대신 정신이 공허하거나 무의미하여

간간히 삶의 기운을 앗아갔다.

 

 

 

어젠 김영준 시인이

거짓의 미학이라는 시집을 한권 보내왔다.

 

 

선생은 오래동안 교직에 계셨는데

몇년전에 명예퇴직을 한 후로는 자주 보지를 못하였다.

 

 

그래도 잊지않고 새로운 시집이 나왔다고 보내주니

고마운 마음에

 

 

예의상 첫 페이지라도 읽어 봐야 겠다고 하고

책을 펼쳤더니

겨울 등나무라는 시가 제일 먼저 떠 올랐다.

 

 

 

겨울 등나무          /  김 영준

 

 

 

서로들 가슴 포개며

추위를 잊고 살아가는 모습이 안쓰럽다.

 

 

시공을 초월한 햇살

휘어진 등허리에 이고

먼 날의 정다움 아늑한 시간 속에서

새롭게 태어날 내일의 작은 소망

남루한 의상으로 감싸주고 있다.

 

 

 

찬바람의 부끄러운 시샘에도

넉넉한 웃음 잃지 않는 무심의 세계에

수천 수만의 어린 입자 펼치면

싱싱한 푸른 잎 그늘을 드리우고

또 다른 풍요의 하늘

보라빛 등 밝히며 걸어오고 있나니...............

 

 

 

 

선생의 시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