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나라가 발칵 뒤집히다 / 61
written by j.i.woo
야곱의 말째인 베냐민을 물어 뜯는 이리라고 야곱은 표현하였다.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하고
예언을 하였는데 (창세기 49장 27절)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은 무례하고
다투기를 좋아하는 인상을 주었다.
특히 레위인 첩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한데
어느 레위인이 바람이 나 도망간 첩을 집으로 데리고 오다가
해가 저물자
마침 기브아성 어느 촌노의 집에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한데 그 지방 불량배들이 이 사실을 알고
레위인과 동성애를 요구하였으나
그가 말을 듣지 않자 화가난 불량배들을
그 레위인 첩을 겁탈하여 차례로 윤간을 하였다.
레위인이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보니
그의 첩이 기브아 사람들에 의하여
밤새 윤간을 당한 후 처절하게 대문 앞에 쓰러져 죽은 것을 보고는
그의 첩의 시신을 열 두 조각으로 토막으로 나눈 다음
이스라엘 열 두 지파 두령 앞으로 보내었다.
당시는 사사시대였는데
이스라엘은 이 전대미문의 엽기적인 사건으로 인하여
어찌 이런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온나라를 벌집 쑤시듯이 쑤셔넣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어나
기브아 사람들을 응징하여야한다며 군사를 모았는데
유독 베냐민 사람들만이 이 전투에 참여하기를 꺼려하였다.
이유인즉 기브아는
베들레헴에서 불과 12km정도 떨어진 작은 언덕에 있는 성으로
베냐민 지파와는 같은 족속에 속한 형제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베냐민 지파만 뺀 나머지 지파 사람들로
한동안 기브아를 공략했는데
치열한 전투가 끝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에 참여했던 다른 모든 사람들이 베냐민 사람들만 유독 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는 크게 분개하였다.
해서 차제에 베냐민 지파마저 멸절시키고자 하였는데
당시 그들의 분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베냐민 지파 사람들 중에서 살아 남은 자들이
모두 다 산으로 도망을 쳤다고 하는데
그 수가 고작 장정 600명에 불과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총회에서
그들마저 대를 잊지 못하도록
어느 지파던지 베냐민 지파의 남은자에게는 딸을 주지 못하도록 금지하였다.
그러나 이 결의는 베냐민 지파의 멸절을 뒤늦게 후회한
이스라엘 총회에서 다시 수정되었는데
베냐민 지파는 가나안 정복시 유다 지파 곁에 있는 작은 땅을 분배받았다.
동쪽으로는 요단강이 경계였으며
북쪽으로는 벧호른 남부 산간지대가 경계였다.
남쪽은 유다와 단의 경계와 나란히 했고 서쪽은 사해북부가 경계였다.
베냐민 지파는 비록 작은 지파였지만
그들이 소유한 땅은 여리고/벧엘/ 기브온/ 라마/ 미스바/예루살렘 같은
쟁쟁한 성읍들이 그들의 몫으로 주어졌다.
다윗 시대에 베냐민 사람이었던 시므이와 세바의 반역은 유명한데
베냐민 지파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었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 기브온 출신이었다.
사울이 죽자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다윗가에 대하여 대단한 불만을 가졌으나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확연하게 갈라진 이후에는 오히려 다윗 왕가에 충성을 바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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