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 감독의 하루 / 그 세번째
written by j.i.woo
그는 여러번 신발을 벗었다 다시 신기를 반복했다.
마치 샤무엘 베게트가 쓴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처럼
기다린다는 것은 참 지루한 일이었다.
점점 화가 치밀었지만 그는 여전히 아내의 손아귀에 잡혀있는 어린애 같았다.
후회가 밀려왔지만 술은 그에게서 유일한 돌파구였고 숨을 쉬게하는 허파와 같은 존재였다.
때문에 술이 조금 과한 날에는 의례껏 단골집을 찾았다.
그가 단골집을 찾는 이유는 누가 있든지 마음껏 큰소리 치며 노래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손님이래야 거의가 낯익은 사람들이었지만 그것보다 영화감독이라는 직책이
그에게 많은 것을 허락했다.
소주 몇 병과 두부김치와 빈대떡 같은 값싼 안주가 고작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감독님이라고
부르며 무척 좋아라했다.
이곳에도 한 때는 한국애인을 따라온 러시아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키가 몹씨 크고 살결이 백옥처럼 하옜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은 러시아 여인은 더욱 이국적인 맛을 풍겼다.
적당히 풍만한 유방과 엉덩이는 술꾼들의 가슴을 설레기에도 충분하였다.
통상 나타샤로 통했는데 이목구비가 뚜렸하고 백러시아계 미인답게 피부 또한 아름다웠다.
남친은 한동안 반체제운동을 하다가 유학을 핑계삼아 러시아로 도피한 엘리뜨였다.
그들이 어떻게 만나 이곳까지 왔는지는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자는 기타를 치며 곧잘 노래를 불렀다.
감독은 이러한 분위기를 무척 좋아하였다.
물론 오고가는 사람들의 면면이 다양하다보니 자연히 이야기꺼리도 풍부하였고
술인심도 후했다.
비록 설익은 이야기이지만 나름대로 미학이 어떻고 정지용의 향수가 어떻고 해사면서
한바탕 떠들어대며 술맛을 돋우는 곳도 이곳이었다.
그러다보니 사람이 사람을 부르고 술이 술을 불렀다.
간혹이었지만 주모는 이제 그만 나가주었으면하고 눈치를 주었지만
술꾼들에게는 시간은 열린 곳간과 같았다.
퍼도 퍼도 마르지않는 옹달샘처럼 술이 오를수록 그 놈은 헤벌레하고 저혼자
나자빠져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그런 탓일까. 술기운이 오르면 그의 뇌리속은 이미 상상의 날개를 펴고
카메라가 쉴사이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영화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젊은 날 충무로 어딘가에서 영화인들과 어울려 다니다가
낙향한게 아닌가 하고 짐작만 했지 누구하나 감독님이 만든 영화제목이 뭡니까하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
원래 거짓은 거짓을 낳기 마련이었는데
두려운건 감독님이 아니라 그것을 물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전혀 맹탕도 아니었다.
그의 영화는 상당히 날카로운 직관과 감성이 잘 어우러진 그런 상상물이었다.
심미적이면서 휴머니즘이 넘치는 그런류의 영화였지만 때로는
관객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농익은 베드신 몇 장면은 양념처럼 잘 버무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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