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 감독의 하루 /그 다섯번째
written by j. i. woo
그나마 일이 있는 날은 다행이었다.
이따금 바람소리에 창문이 덜커덩거렸지만 그는 여전히 씨나리오 마지막 부분을 정리하느라
씨름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끝 부분이 매끄럽지 못한 것 같아 연신 담배를 입에 물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젊은날 충무로에서 어느 유명한 영화감독아래서 조감독을 한 게 그나마 큰 힘이 되었나보다.
그는 지금도 사부님 사부님하고 그를 스승으로 깍듯이 모셨다.
하지만 세월 앞엔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 세상인심은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그의 스승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무리 유명한 영화감독이라도 개발이라는 현실 앞에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못했다.
-야 너 지금 어데야 ?
-집 입니다.
-야 이자식들이 말이야 ...
그의 스승은 특유의 억센 이북사투리를 써가며 닷자고짜 욕부터 해댔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글세 이자식들이 말이야. 내 집을 헌다고 하잖아
-집을요? 그게 얼마나 오래된 집인데 ......나중엔 문화재로도 가치가 있을건데......
역시 무식한 놈들은 어쩔수 없어요.
덩달아 그도 화를 내었다.
.-시장이나 건축업자나 다 똑 같은 놈들이야.이 죽일 넘들......
그의 스승은 여전히 분이 삭히지 않은 모양이었다.
-너 내 말 알것지.
-네 네 알다말고요.
-아, 글세 말이야, 집이란 작가에게는 영혼이 숨쉬는 그런 곳인데
이 무식한 놈들 눈엔 돈 밖에는 보이는게 없는 모양이야. 에잇 간나 새끼들..........
전화를 끊고 나자 어디론가 긴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이제 비도 그쳤나보다.
집이란 아무리 낡고 초라해도 거기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는데
재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옛 것이 자꾸 뭉개지는건 마치 돈 몇푼에 발가벗긴체
거리를 내쫓긴 여인이나 다를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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