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 감독의 하루 /그 일곱번째
written by j.i.woo
그가 보기에도 두 노인네가 오기엔 행색이 너무 초라했다.
밝고 화려한 꽃무늬가 새겨진 붉은 카펫위로 레슬러의 부다뎁 다스굽타나나
화양연가의 왕가웨이 같이 젊은 여인들이 한가하게 앉아 있는게 너무나 신기했다.
이미 아내는 젊은 여간호사와 뭔가 열심히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영화감독이 아니라 오늘만큼은 혼자 버려진 외딴 섬 같은 존재였다.
마치 용두산 공원 양지바른 곳에서 하루종일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는 배고픈 노인네와 같은 무기력함이
계속해서 그를 억눌렀지만 그는 어쩔 수 없이 아내가 돌아올 때 까지 기다려야했다. .
간호사는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고 얼른 나가주었으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아내도 전혀 지지않았다.
해질녘의 수영만은 유난히도 아름다웠다.
간간히 불어오는 해풍과 함께 폴대에 매여있는 하얀 요트들이 이국의 정취를 느끼게 했다.
지중해 연안에서나 볼수 있는 이런 풍광을 즐기면서 이곳에서 영화제 개막작을 본다는 것은
그로서는 크나큰 기쁨이었다.
인도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인 부다뎁 다스굽타나를 만난것도 이곳에서 였다.
그는 레슬러라는 영화를 만들기전에는 경제학을 전공한 순수한 경제학 교수였다고했다.
국제영화제같은 큰 영화제에서 그의 작품이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을 때만 해도
그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는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일부러 박박 민 것 같지는 않는데 석양에 비친 그의 모습은 유난히도 빛이 났다.
부다뎁 다스굽타나의 레슬러는 철도건널목을 지키는 두 남자의 이야기였다.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질투와 시기와 증오와 폭력이 얼마나 비정상적인가를
그는 말하고자 하여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가 말한 인간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옆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아무도 거들떠 보지않으려는 무관심이라고 하였다.
그의 영화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않되겠어요 나가요 .....
아내는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무슨 놈의 병원이 이래요?
아낸 다소 격앙되어있었다.
-왜 ?
-예약이 너무 밀려 우리 같은 사람은 봐줄 수가 없다나요?
-그래?
-제다 쌍꺼플 수술이나 턱이나 코 성형수술 하느라 대기 하는 사람들이래요
-......
아내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않은지 표정이 몹씨 굳어 있었다.
아내의 이런 표정은 처음이었다.
이쯤에서 아내를 먼저 돌려보내는게 옳은지 아닌지 좀처럼 분간이 되지 않았다.
찬바람이 한차례 스치고 지나가자 아내는 비로소 뒤를 힐끗 쳐다봤다.
얼른 따라오지 않고 뭐하느냐?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집에가서 그냥 약만 바르면 안될까?
그는 조심스럽게 아내의 의중을 떠보았다.
-왜요?
-다들 저렇게 바쁜데 우리같은 노인네들이야 뭐 돈이되겠어 ?
그리고 산다면 얼마나 더 산다고
꼭 성형외과에 까지 가서 그렇게 기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무슨 소릴 그렇게 해요. 늙을수록 얼굴을 더 가꾸어야죠.
그리고 아직 딸년 혼사도 있는데 당신 얼굴에 흉터라도 나 있으면 사돈될 집에서 뭐라고 하겠어요.
그리고 딸년 꼴은 뭐가 되고요.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대꾸도 하지않았다.
아니 대꾸할 힘조차 없었다. 아내의 속셈은 뻔했다.
그의 얼굴보다는 과년한 딸년의 혼사가 더 걱정스러운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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