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 감독의 하루 /그 아홉번째
written by j.i.woo
식당 안은 생각보다 더 썰렁했다.
중년여인네 몇명이 한 쪽 구석에 앉아 회국수를 먹으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이미 점심시간을 지난 탓도 있겠지만 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한 느낌이 역력했다.
-회국수 둘 줘요
아내가 말했다.
-여기 참 오래간만이네
-전에는 밤에 와서 그런지
앉을 자리가 없더만 오늘은 영 그렇네.
-아이고 요즘 경기가 어디 경깁니꺼
-여기도 불황을 타는가 보죠
-타다말다요.
요즘 같으면 집세도 못맞출 지경입니더 .
여인이 말했다.
-그라믄 우야노
-그러게 말입니더
젊은 사람들은 맥도날드다 롯데리아다 하고 가버리죠.
그나마 나이든 사람들이 간혹 옛날 생각이 나서 찾아오지만
그것가지고는 입에 풀칠하기도 바빠요.
거기다가 인건비는 자꾸만 오르죠. 진짜 죽을 맛입니더.
-요즘은 어디를 가나 다들 어렵기는 마찬가지인가 봐요
-아이고 이 놈의 정권이 언제 끝날려는지,,,,,
맨날 이북에만 제다 퍼주고 이남사람들은 그냥 앉아서 굶어죽으라는 말인지
생각할수록 부아가 나요.
-곧 좋은 세상이 오겠죠.
-좋은 세상은 안바래도 경기나 좀 살려줬으면 좋겠습니다.
괜히 쓸데없는 소리해서 밥맛 떨어지겠다.
따뜻할 때 얼른 드세요.
-고맙습니다.
그는 뜨거운 국물부터 후루룩 한 입 삼킨 뒤 천천히 고추장을 풀었다.
아침을 그른 탓도 있겠지만 배가 많이 고팠나보다.
아내는 양은 냄비 한 그릇을 눈 깜작할 사이에 후다닥 다 해치워버렸다.
아내가 말했다.
-아무래도 젊은 의사들 한테는 안되겠지요.
변두리로 나가볼까요?
-변두리?
변두리에도 성형외과가 있으려나?
-설마 변두리라고 없겠어요.
다들 저렇게 돈을 벌려고 눈이 벌겋는데 우리 같은 노인네를 누가 거들떠 보겠어요?
-왜요? 어디 아프세요
여인이 안쓰러운 듯이 끼어들었다.
-간밤에 이 사람이 넘어지면서 이마를 다쳤어요.
아무래도 찢어진곳을 기워야할 것 같아 성형외과를 찾았더니
뭔 놈의 병원이 제다 유방수술이다 코수술이다 상꺼풀 수술이다하면서
이 늙은이들은 사람 취급도 안합디다여
-저런 ......
그래서요.
-어쩌겠어요.다니다 다니다 여기까지 왔죠.
-저런 쯔쯔쯔 ......
이 나라가 우찌 될려고 이러는지.
-한나절 내내 돌아다녀도 바늘 몇바늘 꿰맬때가 없으니
이런 나라가 어디있습니까 ?
-그러게 말이예요
-저거들도 애미 애비가 다 있을텐데 그 놈의 돈이 뭔지?
요즘 젊은 의사들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해요
-우짜겠어요
나라가 이 지랄이니 ..........................
요새는 애도 어른도 없어요.
-요새 어른이 어디 있어요?
-더 더러운 꼬라지 보기전에 늙으면 빨리 죽어야 할건데.
나이 드는게 이젠 점점 더 무서워져요
안아프고 그냥 갔으면 좋겠는데 ......
요즘은 자식 새끼도 겁이 나서 함부로 말을 못해요.
-그러게 말입니다. 망쪼죠. 망쪼.
아내는 그동안 참았던 울분들을 여과없이 뺃어내었다.
그런 아내 곁에서 듣기가 민망했든지 그는 괜한 헛기침만 해댔다.
-차라리 최박사한테 가볼까?
-최박사가 누구예요? 아는 분이예요 ?
-응. 우리 모임에 나오는 분인데 요근처 어디에서 성형외과 한다고 했지.
-어디요 ?
-용두산 공원 근처라던데
-그럼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요?
-이런 꼴로 가기가 민망해서 그랬지.
-왜요? 살이 찢어져서 한 바늘 꿰매러 온 것 뿐인데 그게 어땠어요?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수도 있는거지 당신이 사람을 죽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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