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아침에 쓰는 일기 341 / 키신저와 DJ

커피앤레인 2007. 3. 18. 14:27

 

N_M23340_B061230001538838

 

 

키선저와 DJ

 

 

 

 

 

 

 

헨리 키신저는 유대인이었다.

그는 히틀러가 한참 광기를 부릴때  

그의 일가족과 함께 나치의 학살을 피하여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이었다.   

닉슨 대통령시절 국무부 장관을 지낸 사람으로서

아직까지도 그의 외교노선은 미국의 외교교과서라 할만큼 정평이 났다.

얼마전 뉴욕에 나타난 북조선의 외무성 부상인 김계관이 키선저를 만나자마자

당신이 쓴 데탕트에 관한 책을 아주 감명깊게 읽었다고 하여

키신저의 마음을 꽤나 즐겁게 한 모양이었다.

 

 

그에 비해 DJ는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 100번지에서

태어나 인동초라는 그의 별명이 말하듯이 오랜세월 고난을 이겨내고

마침내  대통령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두사람의 공통점이 아주 비슷했다.

둘다 머리가  뛰어나고 수 싸움에 아주 능하며 두사람 모두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인물로서

세계 어디를 내어놓아도 아직도 그 영향력이 대단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를 놀라게 하는

또 다른 점이 퍽 흥미로웠다.

어쩌면 둘다 성공한 사람 같으면서도 실패한 사람같고

실패한 사람 같으면서도 성공한게 어쩌면 그렇게도 비슷할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키신저의 데탕트외교는 누군가 말했듯이

절망에서 선택한 유일한 대안이라는 슬픔을 스스로 내재해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한마디로 핵을 가진 두 공룡이 맞붙어 싸우면

일차적으로 상대방 국민의 3분의 1이 희생양이 되어야했다.

그 나머지도 결코 온전할 리가 없다는공멸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 정책이

 화해정책 곧 데탕트 정책이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DJ의 햇볕정책하고도 아주 유사했다.

 

데탕트를 우리말로 옮기면 화해라는 말이었다.

정책을 보다 아름답게 이미지네이션화하려면 쉽고 간결해야했다.

해서,정치꾼들은 가능한 백성들이 잘 아는 말로 자기의 진실을 숨겼다. 

햇볕정책도 따지고 보면 데탕트와 비슷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 말 만큼 DJ의 의중을 대변한 말도 별로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 햇볕정책이 요즘 상당히 딜레마에 빠졌나보다.

어떤 이들은 이걸 계속 쓰야한다고 주장했고

어떤 이들은 더 이상 쓰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진정 햇볕정책이 북한의 빗장을 푸는 길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자신하지 못했다.

분명한건 정치적인 구호로서는 성한 케이스였다. 

그사이 북한은 핵을 움켜쥐었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6자회담 대변인 노릇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