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아침에 쓰는 일기 596 / 괭이 갈매기 세상

커피앤레인 2007. 12. 1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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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 갈매기 세상

 

 

 

날이 많이 풀렸는지 오늘따라 자갈치엔 사람들이 북적대었다.

싱싱한 횟감을 사러온 사람도 있었고 일찌감치 망년회를 한답시고

시골서 올라온 사람들도 보였다.

개중에는 전라도 사투리도 심심찮게 들렸다.

오늘은 오징어 작황이 좋은지 화물차마다 바쁘게 오징어를 실어날았다.

서방파제 물양장까지 걸어가려면 별 수 없이 자갈치 시장을 거쳐야 했는데

주말 오후라 그런지 햇살이 눈이 부실정도로 따스했다.

작은 낚시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연방 낚시대를 후렸지만

별 소득이 없는지 통 고기를 못 잡는 것 같았다. 

 

 

자갈치 시장을 거쳐 공동어시장에 이르자  한떼의 괭이갈매기들이 하늘을 비상하였다.

얼핏보아도 수백마리는 족히 되어보였다.

이놈들은 공중을 한바퀴돌더니 일제히 공동어시장에 내려 앉았다.

괭이 갈매기는 우리나라 텃새이었다.

이 놈들은 주야장천 한국에서만 살았는데 대부분의 갈매기는 겨울을 나고나면 딴 곳으로 날아가 부화기를 거친다음 다시 날이추워질 때쯤 한국으로 날아왔다.

 

 

오늘따라 괭이 갈매기들이 공동어시장 주변을 서성이는 것은 그곳에 먹어감들이 즐비했기 때문이었다.

점심무렵 고등어나 갈치나 오징어 경매가 끝나고나면

일군의 아줌마부대들이 떼를 지어 둘러앉아 전국으로 갈 고기들을 포장을 하였다.

그러면 개중에는 버리는 고기도 더러 있었다.

물건이 시언찮거나 건지면서 찍혔거나 반토막이 난건 다 버렸는데 괭이갈매기는 그걸 노리고 있었다.

이 놈들은 수백명이 무리를 지어 돌아 다녔지만

영리하게도 아줌마들이 선별하는 동안에는 전혀 주변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대신 바다를 빙빙돌거나 공동어시장 지붕위에 앉아 햇살을 즐기며 놀았다.

 

 

하지만 아줌마 부대들이 하나둘 떠나고 나면 그때부터는 이놈들 세상이었다.

방금 아줌마들이 앉았던 그 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은 평화롭게 자기 먹을 것 만 찾아 이리저리 자릴 옮겨 다녔다.

괭이갈매기 중에는 거의 중닭만한 놈들도 있었는데 아마도 우두머리이던가 아니면 어미 아비 갈매기인것 같았다.

크기도 클 뿐만아니라 생김새도 그만하면 아주 잘 생긴게 꽤나 늠름했다.

한눈에 봐도 사내다운 멋이 있어보였다.

역시 인간이나 갈매기나 외모가 좀 있어 보여야 보기에도 좋은 것 같았다.

왜소하거나 초라하면 일단 보기에도 좀 그랬는데 인간은 돈이 있거나 권력이 있거나 지 나름대로

뭔가 있어야 중량감이 실렸지만 괭이갈매기들도 험한바다 위에서 처절하게 살아남으려면 아무래도 힘이 드세야 그나마 우두머리 노릇을 할 것 같았다.

 

 

어젠 모처럼 주말 오후의 따스한 햇살을 즐기면서 괭이갈매기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인생도 배우는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