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아침에 쓰는 일기 662 / 행님 아입니꺼

커피앤레인 2008. 2. 17. 09:09

 

추 지영 作

 

35055

 

2008/2/17

행님 아입니꺼

 

 

 

초량 돼지국밥집 골목은 여전히 불이 휘황찬란했다.

누군가 맞은편에서 행님아입니꺼하고 인사를 꾸벅했다.

아무리보아도 낯선 인물인데 .............

이 녀석은 보자마자 손을 덥석잡았다.

그라면서 일구가 어떻고 광수가 어떻고 해사면서

한바탕 자기 주변 인물 근황을 늘어놓았다.

 

 

보아하니 소주를 한잔 걸친것 같은데 그리취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적극적으로 아는 척하니

그런 사람을 뿌리치고 니가 사람을 잘못 보았다하기도 민망하고

아는척 하기도 뭣해서 그냥 근성으로 그래 그래하고 맞장구를 쳐주었더니

생판 듣도 보도 못한 사람 이름을 대더니 그 행님은 얼마전에 돌아갔습니다하며

행님 그것 압니꺼 하고 또 물었다.

-아니 모르는데

-담주면 49재입니더

-그렇나 .............

 

 

사내는 좀처럼 잡은 손을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머리엔 어디서 구했는지 해병대 마크가 있는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나이는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키는 짤달막했지만 맵집은 좀 있어보였다.

암튼 길거리에서 오래있기도 뭣해 얼른 마무리를 짓고

가던길을 계속가려는데 술취한 사람을 어쩌지도 못하겠고

한사코 손을 붙잡고 지 설음과 지 살아온 얘기를

쭉 내리 까는데 기도원만 갔다 오는 길이 아니었으면

완전히 뺑돌았을건데 그마나 기도원에 갔다 오는 길이다보니

한참을 듣고있다가

 

아무래도  내가 워낙 전도를 안하니까

하나님이 이런사람을 다 부쳐주었는갑다 싶어

니 술 고만 먹고 내따라 교회 나온나 했더니

행님 교회 다닙니꺼 오데 교횐데예 해사면서

찬송가를 딥다 불러제꼈다.

 

 

-와 니 찬송가 잘하네 했더니

-행님 지가 고아원에 있을 때 배웠다 아입니꺼 행님 모릅니꺼

-아 그렇나 그럼 담에 울교회 함 온나

거기는 전부 다 가난한 사람들만 있어서 니도 편할게다 했더니

-알았습니더 하더니

그제사 손을 슬그머니 놓아주었다.

 

 

암튼 가까스로 헤어지고 나니 썩은 이빨이 하나 빠진 것처럼

시원했지만 그나마 행님 술값 좀 주이소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어제따라 지갑이 텅텅 비었는데 만약에

행님 새핸데 술값 좀 주이소 했으면 얼마나 황당했으랴 ?

내 아무리 돈이 없어도 지갑에 돈은 좀 넣어다녀야겠다.

또 저런 동생 만나면 하다못해 술값이라도 줘야 안되겠나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