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지영作
2010/1/14
겨울 탓이가
외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재끼못을 지나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여기저기 옹기종기 모여있는 산비탈 마을을 지나면
이내 찬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는데
허허벌판을 가로 질러 온 넘은 사람을 만나자 마자
그렇게 매서운 겨울 맛을 알리곤
저 혼자 어디론가 달아나버렸다.
아버님이 공무원이라
도시에서 자라 도시에서만 살았던 나는
마냥 춥다고 징징대었지만
지지리도 못생긴 우리 이종사촌 누나는
그래도 마음씨만은 고왔던지
그런 나를 안아주기도 하고 업어주기도 하고
손을 잡아주며
조금만 더가면 할매집이 나온다고 달랬는데
울 할매집엔 감나무가 엄청 많았다.
해서 그 풍요로움이 지금까지도 내 뇌리에서 사라지지않았는데
한데 감나무하고 이 넘 하고는 전생에 몬 인연이 그리도 많았는지
장가를 갔더니 마눌의 집도 감나무가 엄청 많았다.
울할매집은 문전옥답 전후 좌우가 다 감나무 밭이었지만
처가집은 밉다고 산 전체가 아예 다 단감밭이었다.
해서 처음엔 너무너무 좋아라했지만 ..........................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장난이 아니었다.
한겨울 얼마간만 잠시 쉴틈이 있었지
날이 조금 풀리면
전지 작업을 위시하여
웅덩이를 파고 거름을 줘야하고
거름이 끝나면 또 풀도 뽑고 벌레도 잡아야 한다며
끊임없이 소독약을 뿌려댔다.
혹 그중에 배나무라도 한 두그루 있으면
이 넘은 껍질이 약해서 새들의 표적이 되기 때문에
애써 지은 농사 망친답시고
열매가 열리기가 무섭게 단맛을 느낀
잡새들이 가급적 접근을 못하도록
열매 열매마다 하나씩 신문지로 봉지를 쌌는데
거기까진 그래도 약과였다.
막상 가을이랍시고
수확을 하려면 온 집안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손이란 손은 다 거기에 매달려도 시언찮은 판국에
그나마 백년 손님 이랍시고
맏 사위더러 이래라 저래라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바쁘다는 핑계로 대접도 소홀할 수 없으니
이래저래 눈치를 봤는데 ..............................
이럴때 몸사리면 마눌인들 얼마나 불편할까해서
장모님 리어카는 내가 끌고 갈테니까 걱정마이소 하고
밤늦도록 산에서 집으로 집에서 산으로 오르락 내르락하다보면
나중엔 다리가 다 후들후들거렸다.
하지만 이게 인생살이고 우리네 삶이기에
아직까지 한마듸 불평도 안했는데
요즘은 나보다 자식들이 더 불평을 늘어놓았다.
맨날 팔아버리자고.............................
(나쁜 넘들
노인네들이 그나마 소일거리라고는 그것 밖에 없는데
그것 마저 없으면 그라믄 죽기만 기다릴까)
암튼 그건 그렇고
노가다도 노가다 대장 노릇을 할려면
주디(주둥이)만 가지고 되는게 아니었다.
급하면 급한데로 노가다와 같이 어울려 거들어 주기도 하고
고단하다 싶으면 노래도 불러주고
아이고 내 팔자야 하고 ................
우는 아지매가 있으면
아지매 오늘 저녁에 물꽁집에 가서 소주한잔 하고
모두 노래방에 가자 하고
달래 주었는데
(누구말따나 내가 돌예수쟁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게 예수정신이라고 알았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어디를 가던지 전구가 나갔다면
내가 고쳐줄게 하고 서슴없이 드라이버와 뻰치를 가져오라하기도 하고
화장실이 고장났다하면
함 보자하고 부이를 바꾸어줬는데
사람들은 이 넘이 디자인만 할 줄 알았지
미쳐 그런 자질 구레한 것은 전혀 손도 댈줄 모르는줄 알았나본데
푼돈이라도 벌기 위하여 그런 짓은 하지 않았지만
남이 불편하면 이 넘이 아는한 도배도 해주고
칠도 해주고 못도 쳐주었다.
한데
요새는 몬 소문이 나돌았는지
우사장 니 컴퓨터 잘하제..................
내 블로그 하나 만들어도오 해서
어제도 하나 만들어 주고 그저께도 하나 만들어 주었는데
언넘이 말하길
이 세상에 잼있는게 도대체 모요 ?
우사장은 도대체 몬 재미로 사요 해서
이 넘 대답인즉
젤 재미있는건
첫째는 돈 버는거고 (뭐든지 생산적인게 재미있고)
둘째는 사랑이 재미있고
셋째는 여행하는게 재미있고
넷째는 남을 위하여 봉사하는게 젤 재밌다 했더니
그라믄 나는 새(경상도는 혀를 새라했다)가 빠지게
돈만 벌었나 보네 .......................하고 뒤늦게 자성을 했다.
그나저나 저 70 먹은 노인네는
아직도 그게 건재하나
와 자꾸 나보고 좋은 뇨자 있으면 하나 소개해 달라고 하지 ...........
(설마 유통기간이 지난 물건은 아니겠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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