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아침에 쓰는 일기 / 광화문 복원을 보고

커피앤레인 2010. 8. 16.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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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8/16

광화문 복원을 보고

 

 

 

조선의 법궁(法宮/임금님이 주로 사는 궁)이라고도 하고 정궁(正宮)이라고도 하는

경복궁의 대문인 광화문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언뜻보기에도 멋있고 장엄하고 또한 우리 건축답게 참 단아한 맛이

일품이었다.

 

 

원래 경복궁은 태조 이성계가 정도전등의 건의를 받아들여 

법궁으로 지은 것인데 이유는 간단했다.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서울을 옮기는 일)를 하려면

적어도 왕이 거처할 궁이 필요한데 그 궁의 규모가

그리 작은게 아니었다.

 

 

적어도 나라의 큰 행사를  치루려면

대소사를 느끈히 치룰수 있는 근정전 같은

넓고 큰 뜰이 있는 정전이 있어야 할 뿐만아니라

평소 신하들과 함께 임금이 국사를 볼 수 있는 편전이 있어야 하는데

하루해가 저물면 또 잠을 자야하는  

강녕전같은 침전도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그것만으로 궁궐이 다 완성되는건 아니었다.

왕비는 물론이고 동궁과 공주가 거하는 궁도 있어야하고

빈이나 후궁과

그들의 세숫물을 떠다주는 무수리 같은 천민의 거처하는 곳도 필요했고

거기다 상궁과 내시와 그외 수랏간 일을하는

허다한 사람들의 거처해야 할 곳도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그 규모는 과히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이었다.

 

 

한데 광화문은 궁궐을 드나드는 사람에겐 아주 중요한 문이었는데

광화문은 새벽 4시면 새벽을 알리는 북을 울렸다.

이걸 파루(罷漏)라고 하였는데 파루때

북을 울리는 이유는 음양오행설에 따라

북은 양(陽)을 상징했고 종은 음(陰)을 상징했기 때문이었다.

해서 새벽엔 일찍 일어나 일하라고

양기를 북돋운답시고 북을 크게 울렸고

(왕도 이때 일어 났다고 한다)

밤엔 음이 왕성할 때니 잠을 자면서 자손을 많이 낳아라고 종을 울렸다는데 

암튼 파루때엔

북을 33번쳤고 통금시간인 밤 10시엔 종을 28번 쳤다. 

이걸 인정(人定)이라고 했다.

 

인정이라고 한 이유는

새벽은 하늘이 열지만 통금은 인간이 정한다고 인정이라고 했는데

북을 33번 치는 이유는 불교의 세계관에 의한 것이었다.

통금시간에 28번 종을 치는 것은

하늘을 지키는 28개의 별자리를 상징하는 것인데

밤새 이 나라를 잘 지켜주십시오하는 그런 뜻도 있었다.

 

 

새벽을 알리는 파루는

자격루라는 물시계를 따라 보루각에서 파루를 울리면

근정문에서 광화문 그리고 종루 남대문 동대문으로 옮겨가며 울렸는데

도성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이때서야 비로소 도성 안으로 들어오거나 나갈 수 있었다.

 

 

광화문이 세개인 것은 중앙은 어도로서 왕이 행차할 때만 사용했고

양옆의 두개는 일반인들이 드나드는 문으로 사용했는데

어도는 궁궐 계단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암튼 우리건축 우리궁궐의 첫대문인

광화문이 제모습 제모양을 갖추었다니

만시지탄이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

노가다는 이럴 때 제일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