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아침에 쓰는 일기 /혼례와 야합

커피앤레인 2010. 8. 17.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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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8/17

혼례와 야합

 

 

 

자식을 키우는 사람은 한번쯤은 혼례에 대하여 고민을 했다.

해서 예로 부터 내려오는 전통이 뭔지 여기저기 귀동냥을 하며

혹 배운봐도 본봐도 없는 집안이구나.................하는 소리 듣기

싫어서라도  도대체 울 전통이 뭐야하고 고민을 했는데 

기실 우리의 전통혼례는 주자가례에 따라 거의 조선시대의 것을 답습을 한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혼례는 주로 일반 사대부나 사가에서 쓰는 말인데 비해

가례(嘉禮)는 왕실에서 하는 결혼식을 가리킬때 쓰는 말이었다. 

해서 혼례/婚禮는 혼인하는 예식이란 말이지만 

가례/嘉禮는 아름다울 가/嘉자를 사용하여

아름다운 예식이란 말로 왕가의 혼례를 칭송했는데

요즘은 이말도 남발이 되어 소나 개나 다 가례라고 하였다.

 

 

한데 혼례를 치르려면 여러가지 절차가 많았다.

그걸 육례/六禮라고 하였는데

결혼해야할 과년한 딸이나 자식이 있으면

일단 중매쟁이를 넣어 혼인을 의논하였는데 그걸 의혼/議婚이라고 했다.

의혼이 이루어지면 두번째로 납채라는 걸 했는데

납채는 신랑신부 혼인약정서를 주고 받는 걸 말했다.

지금의 혼인약정서와 같은 것인데 납채가 이루어지면

세번째로 납패라고 하여 폐백을 보내었다.

납폐는 지금의 함을 보내는 것과 같았다.

 

 

납폐가 끝나면

네번째로 친영을 했는데 친영은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여 오는 것을 말하였다.

친영이 끝나면 다섯번째로 부현구고라 하여

첫날밤을 지낸 신부가 시부모님을 뵙고 음식상을 올리는 것을 말했는데

이게 다섯번째 절차였다.

 

 

부현구고가 끝나면 시집온 신부는 사흘 후 시부모나 조상의 사당에 들려

인사를 드렸는데 이 절차가 다 끝내야 비로소 그 집안의 며느리라고 인정을 하였다.

한데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혼인을 하거나 둘이 눈이 맞아

(예전엔 그러기나 했겠우) 살을 맞대고 살면 옛사람들은 그걸 야합(野合)이라고 하였다.

 

 

야합이라고 이름을 붙인것은

예법을 중시했던 당시의 사람들의 눈엔 그게 마치 들짐승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여겼는가 본데 ..........................

잼있는 것은 요즈음 정치무대에서도 저거끼리 야합했니 .......................해샀는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그게 욕인건 틀림없는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