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아침에 쓰는 일기 / 후궁이 그립나

커피앤레인 2010. 8. 24. 14:28

 

 

40206

 

2010/8/24

후궁이 그립나

 

 

이조시대 왕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아방궁에만 살았는갑다 했더니 그게 아닌갑다. 

 

 

중국의 왕들은 저거가 더 큰 집이라고 천제 또는 황제라 부르고

우리는 쪼매 작다고 제후에 봉하듯이 왕이라고 칭하였는데

우리나 저거나 중화(中華)사상을 근본으로 삼은 것을 보면

일맥 상통하면서 또 그나름대로 그쪽은 그쪽대로 이쪽은 이쪽대로

독특한 문화를 이어갔나보다.

 

하긴

중화사상의 근본이 태학(太學)이라하여 

학문을 숭상하고  일평생 학문과 삶이 일치된 사람을 존경하여

후세사람들이 그를 높이어 제사를 모시고  

그에 못지않게 동시에 예악(禮樂)을 소중히 여겨 

시와 풍류를 한껏 즐겼다는데 ...............

 

한데 잼있는 것은 

그런 엄격한 유학을 숭상하면서도

왕은 왕비 한사람만으로는 도무지 잠이 잘 오지 않았는지 

후궁을 여럿이 맞이 하였다는데 

그게 또 참 재미있었다.

 

 

울같은 무지렁이들이야 후궁하면 

장희빈이나 장녹수만 있는줄 알았지 

무수리 같은 천민을 좋아하여 후궁을 들인 경우도 

있었는지 잘 몰랐는데 

영조의 생모가 무수리(궁녀들 세수물이나 떠다주는 하녀)출신이었다니 

참으로 놀랍고도 놀라웠다.

 

 

하긴 세종대왕도 무수리를 좋아하여 

끝내 후궁으로 들였다 하더라마는 

암튼 후궁도 후궁나름인지 

그 서열이 꽤나 층층이었다.

 

후궁중에 제일 서열이 낮은게 

종4품으로 숙원(淑媛)이었는데

숙원은 맑을 숙 /미녀 원이니까 

맑고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말이었다.

종4품 바로 위 서열은 정4품으로 소원(昭媛)이라고 하였는데 

소원은 밝을 소/昭이니까 아마도 밝고 아름다운 미인이라는 말인가 보다.

 

한데

그 위 서열인 종3품은 숙용(淑容)이라고 불렀는데

얼굴 용/容자를 쓴걸로보아

맑은 얼굴을 가진 여자라는 뜻인가 보다.

하긴 그 위가 바로 정3품으로 소용(昭容)이라고 하였으니

밝은 얼굴이란 뜻이니 예나 지금이나

 우찌 여인들이 자기 얼굴에 그리 민감안하겠노......

 

 

그 위가 종2품으로 숙의(淑儀)인데

의/儀자가 모양 의/儀이니까

서열이 올라갈수록 얼굴보다는 품위를 더 따졌는갑다.

해서 정2품 역시 소의(昭儀)라고 불렀는데

 

 

귀인(貴人)은 종1품의 후궁에게 내린 직첩이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빈(嬪)은 정 1품으로

후궁중에는 제일 높은 지위였는데

아내 빈/嬪자를 쓴 것으로 보아서도 알겠지만

그만큼 왕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나보다.

 

 

한데 이조시대 후궁을 정식으로 맞아들인 것은 

3대왕 태종때였는데 

태종은 왕권을 잡은  이후로 왕후 민씨와 별로 사이가 좋지않았는지 

아니면 견물생심이라고 이쁜 뇨자가 이리도 많은데 

내 우찌 한뇨자에게만 충성하겠노 했는지 

암튼 후궁제도를 공식적으로 채택하였다는데 .....................

(민왕후가 속으로 모라 생각했을까?)

 

 

울같은 무지렁이들은 후궁은 고사하고

마누라 하나라도 잘 간수하면

일단 그 인생 성공했다고 하는데

요즘은 집집마다 각방 쓰는 사람이 와이리 많은지 ..............

지나나나 후궁이 그리운건 아니겠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