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여자
예전엔 잘 몰랐었는데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사람을 함부로 사귀지 말라는
옛어른들의 말씀이 참 옳은 말씀이구나 하는게
더욱 기억에 새록새록했다.
해서 요즘은 가능하면
무턱대고 사람에 얽히는 것을 삼가했는데
그에 반해 세월이 지나도
보고 싶은 사람
그리운 사람은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그리움은 여전했다.
이 넘은 거의 반평생을 노가다 현장에서 살아서 그런건지,
대부분 기억에 남는 뇨자들은
노가다 현장에서 만난 주인들이었다.
한데 그중에서도 꼼보 점순이는 좀처럼 잊혀지질 않았다.
부산에서도 하꼬방이 제일 많은
영도 청학동 산복도로 위 그 꼭대기에 꼼보 점순이는
화장실도 없는 단층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우짜다가 돈을 조금 모았는지
2층으로 증축 했는데
후배 넘이 저거 이모님 집이라면서
선배님 아니면 믿을 넘이 없습니다 해사면서
알랑방귀를 뀌는 바람에
(지도 노가다인데 왜 나한테 맡겼는지 난 지금도 모른다)
어쩌지 못해 공사를 맡았지만
공사현장이 얼마나 열악하던지
모든자재를 머리로 이고 날아야 할 뿐만 아니라
정화조 묻을 공간조차도 없었다.
한데 그보다 더 기가 찬 것은
1층은 가난한 살림에 얼마라도 공사비에 보태야하니
남에게 전세로 줘야하고
2층은 부부와 다 큰 딸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함께
살아야 하는데 그러기엔 공간이 너무 작았다.
해서 아무리 궁리해도
꼬딱지만한 공간에 방세개를 나눌 수 없어
옥상에 공부방 같은 미니 다락방을 하나 만들어 주었더니
이게 말썽이었다.
그렇잖아도 눈꼴 싸나운 사람이 많은데
미니 다락방이 하나 올라가자 때는 이때다 하고
민원을 발발이 넣었는데
아이고 그 넘의 동네 인심은 모가 그리도 싸나운지.......................
암튼 날만 세면
망치부대가 주르르 몰려와 4번이나 부수었는데..............
처음엔 내 생전에 이런 꼴을 당하니
너무 창피스럽기도 하고
큰 돈도 아니면서 내가 이렇게 까지 하면서
집을 지어야하나 하고 생각하니 회의도 들고 더럽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어쩌랴
싸나이 한번 맡았으면 끝까지 책임은 져야지
우찌 다 큰 딸을 부부와 같은 방에서 자라하겠나
이제 사춘기를 막 지난 아들을 부모와 함께 자라하겠나
책임은 내가 질테니까 김목수 니는 아무 소리말고
내 시키는대로 해라했더니
/사장님 난 이런 공사 더는 못하겠습니다.....................하고
나자빠지는 바람에
/알았다. 일단 모든건 내가 책임질테니까
니는 오늘은 쉬어라 ................하고
그 길로 동 사무실로 찾아가 동장을 만나
/보소 사람사는게 모요?
인생은 이런거고 건축은 이런건데
당신은 마누라하고 밤일도 안하요 .......................해사면서
한두번도 아니고 세번이나 집을 부수는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 있오
꼴랑 이것 가지고 내가 돈을 벌겠오
워낙 집안이 가난한데다가 10여년 이상 화장실도 없이 그렇게 산다해서
내가 일부러 맡아준 것 뿐인데
나도 미니 다락방은 불법인걸 아오
그렇지만 아이들이 다 컸는데
부부와 같이 재울까요?
당신은 동장이면서
우찌하여 이 동네 가난한 사람들 심정을 그리도 모르요 했더니
동장도 난감했던지
/한번만 더 부수면 그 다음에 제가 책임 질테니 .........
걱정마이소 해서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아들 방까지 다 만들어 넘겨주었더니
꼼보 점순이도 뭔가 가슴에 와 닿은게 있었던지
/사장님 제가 돈은 없지만 배 한상자라도 선물할게요 ................하며
기어이 내 차 트렁크를 열어 배 한상자를 실어주었는데
한데 진짜 내 가슴을 찡하게 한건
꼼보 점순이 눈에 흐르는 닭똥같은 그 눈물이었다.
해도 저물고
낙엽이 지고나니 오늘따라 갑자기 꼼보 점순이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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