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조 용기 목사의 눈물

커피앤레인 2011. 4. 2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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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용기 목사의 눈물

 

 

 

설교시간에 목사가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더러 보았지만

교인들을 향하여 큰 절을 하는 경우는 단 한번도 보지 못했는데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주일 설교를 하다가

조 용기 목사님이 교인들을 향하여 큰 절을 하며 사죄하였다고

매스컴 마다 대서 특필을 하였다.

 

 

나는 젊은 날 그가 쓴 영문판 Successful Living  이란 글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

더우기 그가 이끄는 월드미션이란 프로그램은

언제나 보아도 신선한 충격이었고 성령의 역사가 풍성한 그런 집회였다.

해서 여의도 순복음 교회 주일예배 설교는 잘 듣지 않아도

월드미션만큼은 늘 볼려고 애를 썼는데 

그만큼 나는 그분의 인생여정과 복음에 대한 열정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나의 평가는 거기까지 였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은 

좋은 면도 많았지만 나쁜 면도 그만큼 많았다.

그들이 원했던, 원치 않았던간에 대형교회 위주로

한국교회의 정서를 재편한 것은 물론이고 

복음전파라는 이름하에 자행된 물량주의, 배금주의도  

순복음 여의도 교회를 비켜갈 순 없었다.

 

 

때문에 헐벗고 굶주린 중소도시의 작은 교회는 종종

사회의 조롱은 물론이거니와 같은 교인들까지도

암암리에 경멸시 하는 경향이 도드라졌고 

심지어 큰 역사가 않일어나면  그 교회 목회자는

이미 실패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괄시를 당하기도 했다.

 

 

어쩌면 조 용기 목사의 눈물은 그런 면에서 보면

단순히 그와 그의 가족과 그의 교회에 한한 눈물이 아니라

이 나라의 수많은 양심적인 목회자와  교우들에게 끼친

크고 작은 악들에 대한 

참회의 눈물이어야 마땅할게다.

 

 

한데 교회는 근본적으로 3가지를 가르치지않으면

그건 사이비이거나 아니면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한

그렇고 그런 교회에 지나지 않았다.

하나는 생명이고

또 하나는 자유이고 나머지 하나는 인간존중이었다.

 

 

우리의 생명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데

그 생명의 본질은 하나님이었다.

때문에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하셨다.

이 말씀은 우리의 생명의 아이덴티티는

하나님을 통해서만 해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누구라도 하나님을 빼고는 자기의 생명을 설명할 수도 찾을 수도

없다는 진리이었다.

 

 

두번째로 가르쳐야하는 것은 자유이었다.

이 자유는 신앙의 자유나 이념의 자유가 아니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해탈과 같은 것인데

크리스챤은 모든 것으로 부터 자유해야 비로소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다.

때문에 성경은 얽매이지 마라/ 죄의 종이 되지말라고 

누누히 가르쳤는데

그렇다고 무책임이나 방종을 의미하는건 또 아니었다.

이 자유는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는 그야말로

평안함인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않고 기도하며 살아라고 한지도

모른다.

해서 진정한 크리스챤일수록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심지어는 인간적인 사랑으로 부터도 자유했는데

그릇된 사상으로 인하여 교회내에 물량주의와 배금주의가 팽배한 것은  

우상숭배 만큼이나 참 통탄할 일이었다.

 

 

세번째가 인간존중이었다.

교회는 잃어버린 양 한마리에 대한 언제나 진정한 이해와 의식이 

살아있어야 했다. 

잃어버린 양에 대한 진정한 이해나 의식이 없으면

비록 수많은 교인들이 매주일 교회당을 들락날락해도

그건 단순한 구성원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야말로 공허 그 자체였다.

 

우린 누구나 마찬가지로 잃어버린 양과 같은 존재였다.

때문에 서로를 귀하게 생각해야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지나쳐 이기주의내지는 분리주의를 지향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전혀 그렇지 않은게 문제였다.

 

 

해서 교회는 늘 하나님 앞에 겸허하게 나아가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려고 늘 옷깃을 여미어야 하는데도

순복음 여의도 교회는 이미 걸출한 두분

최자실 목사님과 조 용기 목사님이 은연중에

그들 마음 속의 우상으로 자리 잡은건 아닌지  심히 염려스러웠다.

(물론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들이 더 잘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