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이 부럽네예
사람은 어쩔수 없는 동물이었다.
여름엔 겨울이 그리웠고 겨울엔 여름이 그리웠다.
폭염이 계속되자 한 밤에도 좀처럼 낮의 열기가 가시지 않았다.
연휴인데다 딱히 급히 처리해야할 일도 없는터라 해운대 가서 눈요기라도 해볼까하고
군침을 실실 흘리고 있는데 권태원 시인이 행님 있습니까?하고 소리를 질렀다.
-응.와?
-올라가도 되겠습니까?
-올라온나.
-어디 가시려는 참입니까?
-응.올만에 해운대나 함 가보려고
-그럼 같이 가입시다.
-같이?
난 그를 시인이라고 불렀고 기인이라 취급했고 땡중이라고 놀렸다.
그도 그럴 것이 14번째 시집을 낸지도 오래되었고 술만 들어갔다하면
가방이고 옷이고 다 내버리고 저혼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나이가 들면서 앞머리칼이 예전만 못하자 차라리 머리를 박박 미는게 어떻겠노 했더니
어느날 민대가리로 왔는데 영판 지리산에 자리잡은 스님 모습이었다.
-야 두상이 끝내주네 .앞으로 그렇게 다녀라....................했더니
-야 하면 스님한테 막먹자는 것 아입니까?
-그렇나? 염불도 못외우는게 그게 몬 스님이고 .땡중이지
-아이고 행님도.그 얘기 못들었지예
-몬 얘기
-와! 어떤 스님이 과부댁에 찾아가서 시주라도 얻을세라 목탁을 두드리자
과부가 그랬다 안합니까
-뭐라꼬?
-방안에 앉아 주나봐라 주나봐라....................하고 궁시렁궁시렁 거리니까
스님이 밖에서 그 소릴 듣고는 안주면 가나봐라 가나봐라 했다 안합니까.
-에잇 땡중아 오데서 그런 소리만 듣고와 여기서 씨부리노
그러니 땡중이라 하지
지하철 해운대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역에서 빠져나와 겨우 몇걸음도 떼기전에 땡중이 배고파 죽겠다고
또 호들갑을 떨었다.
-와 배고프나?
-하늘이 노랗네요
-우야노 .이 무더운 날 큰스님이 쓰러지면 죽는다던데
저 아래 밀양순대국밥 있다.맛도 좋고 아짐씨들도 이쁜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안했나. 거기가서 우리 요기부터 하고 다니자.
-행님 돈 있습니까?
-문둥아.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된다. 오늘은 내가 살게.
밀양순대국밥집은 아직 이른 저녁시간인데도 꽤 손님이 많았다.
돼지국밥 두 그릇에 시원소주 한병을 시킨다음 이리저리 둘러보니
실장인지 주인장인지 꽤 이쁜 여인이 이쪽을 쳐다보며 눈웃음을 살짝 지었다.
-저기요?
땡중은 어느새 서울 말투로 바뀌어있었다.
-저기요.스미마셍.제가 한국말을 조금만 합니다.하고 또 능청을 떨며 일본놈 행세를 했다.
(아이고 이 죽일놈을 봤나.와 미국놈이라고는 안하노?)
-아 그러세요.
여인은 아는지 모르는지 일본인이라고하자 아까보다 더 친절했다.
역시 여자는 지 마누라이든지 남의 마누라이든지 친절해야 제 맛이었다.
여자가 이뻐서 그런건까? 돼지국밥은 생각보다 엄청 더 맛있었다.
두 놈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소주 한병을 다 깐 다음
판화가로 유명한 강동석이 한테 전화를 때렸다.
-행님.이왕 마시는 것 강화백이 자기 아뜨리에서 막거리 한사발하자며 그리로 오라고 하네요.
-그래?
해서 비키니고 뭐고 다 내버려두고 강동석 아뜨리에에 갔더니 평소에 생탁을 즐기는지
냉장고엔 생탁이 그득했다.
사실 이 놈은 예전에 그를 한번도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어색했다.
한데 자리에 앉자마자 포스가 예사 포스가 아니니 우짜니 해사면서
이 놈을 보고 자꾸 어르신 어르신하고 말을 시켰다.
-봐라 봐라 아우님아! 같은 초등학교 20년 후배라며 ..................
-네
-니가 어르신.어르신하니까 듣기가 좀 그렇다.
차라리 선배님 하던가 아니면 큰형님하고 불러라.
그리고 니 언제 전시회 한다고 했노?
-9월9일 해운대 해오름갤러리에서 합니다.
-그래? 그럼 피카소갤러리 강여사알겠네.
-알다말고요.
-그럼 그날 우리 넷이서 선장집에서 싱싱한 자연산 횟거리 놓고
쇠주나 한잔하자.
-좋지요.
권시인은 이미 많이 취했나보다.
혀가 제법 꼬부러졌다.
-태원아. 이제 가자 .넘 많이 먹었나보다.
-예 행님.
아니나 다를까 권시인 부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직접 받지는 않았지만 목소리가 꽤 날카로워보였다.
-봐라.아우야. 옛날엔 무자식 상팔자라 했는데
요즘은 마누라 곁에 없는게 제일 천국이다이.
니도 아이 하나 있는 것 얼른 키워서 마누라와 함께 대학은 서울로 보내버려라.
그라믄 예술가는 그게 바로 천국이다.
-아이고 .선배님.자주 와서 한 수 가르쳐주이소
진짜 선배님 부럽습니다.나도 선배님처럼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래?
두보가 이런 시를 썼다.
술 취하지 않은 자가 어찌 술 취한 자의 그 흥취를 알겠느냐고......................
혼자되어 봐야 비로소 혼자 사는 재미를 안데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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