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선배님이 부럽네예

커피앤레인 2016. 8. 15. 17:30

 

 

 

선배님이 부럽네예

 

 

 

 

 

사람은 어쩔수 없는 동물이었다.

여름엔 겨울이 그리웠고 겨울엔 여름이 그리웠다.

폭염이 계속되자 한 밤에도 좀처럼 낮의 열기가 가시지 않았다.

 

연휴인데다 딱히 급히 처리해야할 일도 없는터라 해운대 가서 눈요기라도 해볼까하고

군침을 실실 흘리고 있는데 권태원 시인이 행님 있습니까?하고 소리를 질렀다.

-응.와?

-올라가도 되겠습니까?

-올라온나.

-어디 가시려는 참입니까?

-응.올만에 해운대나 함 가보려고

-그럼 같이 가입시다.

-같이?

 

난 그를 시인이라고 불렀고 기인이라 취급했고 땡중이라고 놀렸다.

그도 그럴 것이 14번째 시집을 낸지도 오래되었고 술만 들어갔다하면

가방이고 옷이고 다 내버리고 저혼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나이가 들면서 앞머리칼이 예전만 못하자 차라리 머리를 박박 미는게 어떻겠노 했더니

어느날 민대가리로 왔는데 영판 지리산에 자리잡은 스님 모습이었다.

-야 두상이 끝내주네 .앞으로 그렇게 다녀라....................했더니

-야 하면 스님한테 막먹자는 것 아입니까?

-그렇나? 염불도 못외우는게 그게 몬 스님이고 .땡중이지

-아이고 행님도.그 얘기 못들었지예

-몬 얘기

-와! 어떤 스님이 과부댁에 찾아가서 시주라도 얻을세라 목탁을 두드리자

과부가 그랬다 안합니까

-뭐라꼬?

-방안에 앉아 주나봐라 주나봐라....................하고 궁시렁궁시렁 거리니까 

스님이 밖에서 그 소릴 듣고는 안주면 가나봐라 가나봐라 했다 안합니까.

-에잇 땡중아 오데서 그런 소리만 듣고와 여기서 씨부리노

그러니 땡중이라 하지

 

지하철 해운대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역에서 빠져나와 겨우 몇걸음도 떼기전에 땡중이 배고파 죽겠다고

또 호들갑을 떨었다.

-와 배고프나?

-하늘이 노랗네요

-우야노 .이 무더운 날 큰스님이 쓰러지면 죽는다던데

저 아래 밀양순대국밥 있다.맛도 좋고 아짐씨들도 이쁜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안했나. 거기가서 우리 요기부터 하고 다니자.

-행님 돈 있습니까?

-문둥아.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된다. 오늘은 내가 살게.

밀양순대국밥집은 아직 이른 저녁시간인데도 꽤 손님이 많았다.

돼지국밥 두 그릇에 시원소주 한병을 시킨다음 이리저리 둘러보니

실장인지 주인장인지 꽤 이쁜 여인이 이쪽을 쳐다보며 눈웃음을 살짝 지었다.

-저기요?

땡중은 어느새 서울 말투로 바뀌어있었다.

-저기요.스미마셍.제가 한국말을 조금만 합니다.하고 또 능청을 떨며 일본놈 행세를 했다.

(아이고 이 죽일놈을 봤나.와 미국놈이라고는 안하노?)

-아 그러세요.

여인은 아는지 모르는지 일본인이라고하자 아까보다 더 친절했다.

 

역시 여자는 지 마누라이든지 남의 마누라이든지 친절해야 제 맛이었다.

여자가 이뻐서 그런건까? 돼지국밥은 생각보다 엄청 더 맛있었다.

두 놈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소주 한병을 다 깐 다음

판화가로 유명한 강동석이 한테 전화를 때렸다.

-행님.이왕 마시는 것 강화백이 자기 아뜨리에서 막거리 한사발하자며 그리로 오라고 하네요.

-그래?

해서 비키니고 뭐고 다 내버려두고 강동석 아뜨리에에 갔더니 평소에 생탁을 즐기는지

냉장고엔 생탁이 그득했다.

 

사실 이 놈은 예전에 그를 한번도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어색했다.

한데 자리에 앉자마자 포스가 예사 포스가 아니니 우짜니 해사면서

이 놈을 보고 자꾸 어르신 어르신하고 말을 시켰다.

-봐라 봐라 아우님아! 같은 초등학교 20년 후배라며 ..................

-네

-니가 어르신.어르신하니까 듣기가 좀 그렇다.

차라리 선배님 하던가 아니면 큰형님하고 불러라.

그리고 니 언제 전시회 한다고 했노?

-9월9일 해운대 해오름갤러리에서 합니다.

-그래? 그럼 피카소갤러리 강여사알겠네.

-알다말고요.

-그럼 그날 우리 넷이서 선장집에서 싱싱한 자연산 횟거리 놓고

쇠주나 한잔하자.

-좋지요.

 

권시인은 이미 많이 취했나보다.

혀가 제법 꼬부러졌다.

-태원아. 이제 가자 .넘 많이 먹었나보다.

-예 행님.

아니나 다를까 권시인 부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직접 받지는 않았지만 목소리가 꽤 날카로워보였다.

-봐라.아우야. 옛날엔 무자식 상팔자라 했는데

요즘은 마누라 곁에 없는게 제일 천국이다이.

니도 아이 하나 있는 것 얼른 키워서 마누라와 함께 대학은 서울로 보내버려라.

그라믄 예술가는 그게 바로 천국이다.

-아이고 .선배님.자주 와서 한 수 가르쳐주이소

진짜 선배님 부럽습니다.나도 선배님처럼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래?

두보가 이런 시를 썼다.

술 취하지 않은 자가 어찌 술 취한 자의 그 흥취를 알겠느냐고......................

혼자되어 봐야 비로소 혼자 사는 재미를 안데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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