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일기

내마음 알지예

커피앤레인 2016. 9. 15. 12:36

 

내마음 알지예

 

 

 

 

 

 

몇해전 겨울 여행삼아 난생 처음 제주도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이었다.

빈의자가 너무 마음에 들어 찍은 것인데 마치 가을같은 기분이 물씬 풍겼다.

색깔에 따라 사람의 마음도 변하나보다.

가을엔 따스한 색깔이 어울렸고 겨울엔 붉은 색이 가슴을 많이 설레게했다.

서둘러 공원묘지에 간건 참 잘한 것 같았다.

오늘따라 텅빈 주위가 너무 반갑다.

가족과의 만남도 잠깐 나는 사무실로 되돌아와야했다.

추석이 끝나기 무섭게 내가 디자인한 공사 감독을 해야하기 때문이었다.

난 한평생 내가 디자인했거나 설계한 것만 공사를 맡았다.

때문에 1년에 기껏해야 두 세 점 이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을 할 땐 혼신의 힘을 다 기우렸다.

그래서 그런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맙다고 1-2백만원씩 보너스를 덤으로 주었다.

역시 감동은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닌가보다.

 

추석이 오면 간혹이지만 마누라보다 더 생각나는 여인이 있었다.

꼼보 점순이였다.

그녀는 영도 청학동에 살았다.

영도란 말은 원래 절영도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경치가 하도 아름다워 옛사람들이 오늘날의 영도를 절영도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영도다리는 현인 선생의 굳세어라 금순아로도 유명했다.

점순이는 영도 중에서도 그 산비탈 청학동 중턱에 살았다.

옛날에는 영도가 참 좋은 동네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영도는 잘사는 사람보다 못사는 사람들이 더 많은걸로 유명했다.

그도 그럴것이 전국민이 6.25동란을 피해 부산으로 부산으로 몰려왔는데

산이면 어떻고 비탈이면 어떠랴.

하꼬방이라도 지어 몸이라도 누우면 감지덕지이지.

 

그런 점순네도 고생고생 끝에 그 자리에 단층주택을 지었나보다.

건축면적이자 대지면적이 고작 13평이었다.

하지만 세월은 사람의 형편을 고려하기엔 너무 할 일이 많았다.

새로 태어나는 애기 챙기랴 이 세상 하직하는 사람 전송하랴

걸핏하면 미사일을 쏘아대는 철부지 같은 원수님인지 웬쑤님인지 챙기려다보니

점순네처럼 어느새 훌쩍 커버린 가스나 머스마 챙길 여유마저 없었다.

해서 점순네 부부는 마침내 다 큰 가스나 머스마를 한 방에 재울 수 없다하고

큰 마음먹고 2층 증축을 결심했는데 그 이종사촌 제부가

대단위공사현장 설비설계 및 감리를 운영하는 강소장이었다.

어느날 아침 느닷없이

-존경하는 선배님!하고 강소장이 전화를 때렸다.

한데 간밤에 마누라 엉덩이라도 만졌는지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가보다.

-갑자기 존경은 몬 존경이고? 와?뭔 좋은 일이라도 있나?

-내 체면 한번만 세워주이소.

-체면?

 

 

하여,맡은 공사가 청학동 산복도로 위 산비탈에 위치한 꼼보점순네 증축공사였다.

한데 설계도면을 보니 디자인이 전혀 맘에 들지않았다.

어렵사리 자리를 마련해 커피를 마시면서 처음 설계한 친구에게 이래저래 뜯어고쳐야하겠다 하였더니

지는 이미 설계비는 받았으니 그건 선배님 몫이라며 흔쾌히 오케이했다.

해서 꼼보 점순이 성형하듯이 구조도 바꾸고 외관도 좀 더 세련되게 띁어고친 다음

당시로서는 불법이지만 다 큰 머스마를 위해 옥상에 다락방까지 떠억 넣어주었더니

왠놈의 민원이 그리도 많이 올라오는지?

결국은 두번 부수고 세번째는 이 놈도 독이 올라 구청장을 찾아가서

보소.당신 같으면 다 큰 가스나 머스마 같은 방에 재울수 있오?하고

지랄염병을 했더니 평소 친하게 지냈던 사이이다보니

지도 난감했나보다.

괴롭지만 한 번만 더 부수면 그 다음은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약속을 단단히 했다.

 

해서, 세상사 처음부터 잘 사는 놈 있었나?

어차피 사는게 모 아니면 또인데

망하면 얼마나 망할거며 흥하면 얼마나 흥할건가?해서

멀쩡한 벽 한면을 왕창 다 부순다음 10cm정도 더 안으로 들여 지어줘라.하고 지시를 했더니 

뒷 집 인간들도 저거가 봐도 해도 너무했다 싶었던지 그 이후로는 쥐 죽은듯이 잠잠했다.

추석을 불과 이 삼일 앞두고 준공검사까지 끝내고 등기필증까지 넘겨주었더니

꼼보점순네가 내 머리통만한 배 한 상자를 청과시장에서 사서 추석선물이라며 기어이

내 차 트렁크에 넣어주었다.

하며,이내 눈물을 글썽글썽 하더니

-사장님. 내 마음 알지예...................................하고 울었다.

(뜻인즉 돈만 많으면 얼마든지 더 잘 대접하고 싶었은데

이것 밖에는 더 대접을 못하겠네예.......하는

그동안 내내 마음 졸이며 감추어 두었던 여인네의 깊은 속정이기도 하고 울림이기도 하였다.)

내 참!~살다살다 별일도 다 본데이. 지금 생각해도 나도 눈물이 날려고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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