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기간
사람은 결코 환경을 무시하지못했다.
그건 나도 비슷했다.
새로 옮긴 집은 여러모로 좋은게 많았다.
도심에서도 꽤나 번화한 곳에 있었지만 의외로 조용했다.
예전엔 집이 길목에 있어서 그런지 걸핏하면 사람들이 찾아왔다.
때문에 자주 내시간을 빼앗겼지만 지금은 대문을 거쳐 들어와야 하기 때문에
미리 전화를 하지 않으면 좀처럼 이 곳까지 쳐들어오지 못했다.
전에 살던 집은 마당이 없기 때문에 마음놓고 꽃을 기를수도 없었는데
손바닥하지만 명색이 마당이란게 있어 문만 열면 언제든지 꽃을 볼 수가 있었다.
철쭉이 지면 장미가 피었고 장미가 지면 게발과 수국이 뒤를 이었고
지금은 봉숭아와 분꽃도 얼굴을 내밀었다.
꽃을 기르는 재미 중에 가장 큰 재미는 꺽꽂이한 것들이
하나 둘 뿌리를 내리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었다.
간혹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는 놈도 있었지만
대개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저들은 인간처럼 그렇게 배신은 하지않았다.
살구나무도 그랬고 장미도 그랬고 수국도 그랬다.
무궁화나 개나리나 무화과도 곧잘 뿌리를 내렸다.
해서, 특이한 색깔의 장미나 수국을 만나면 가지 하나를 얻어
꺽꽂이를 했는데 꺽꽂이는 4-5월이 가장 안성마춤이었다.
그래서그랬을까?
종묘상에 가면 더위가 오기전에 묘종을 제다 내다 팔았다.
이미 땅의 기온이 상승하면 더 이상 묘종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사한지도 거의 2달이 가까워지면서 이제사 서서히
주변환경에 적응이 되었나보다.
처음처럼 날파리와 모기 떼들도 그리 많지 않았고
마음도 많이 안정이 되었는지 예전에 필기만 부지런히 해두었던
외국어 노트들을 다시 꺼내보았다.
뭐니뭐니해도 어학은 꾸준히 하는게 비결인데 한동안 너무 놀았나보다.
영어도 그렇고 일본어도 그렇고 중국어도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일상적인 대화는 별 무리가 없을텐데
어디에 정신이 팔린건지 내버린 시간들이 조금은 아쉬웠다.
어젠 김충진화백이 기분이 좋았나보다.
선생이 술을 산다며 잔을 권했다.
나도 고맙다고 잔을 권했다
강회장은 이미 술이 좀 거나했나보다.
얘기를 하다 막히면 예의 닐리리야를 불렀다.
홍선이는 선미네 가게에 들려 한잔 더 하입시더..........하더니
자리에 앉자마자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잠이 쏱아지나보다.
안주만 시켜놓고 혼자 가버렸다.
12시가 가까웠는데 항구센타는 아직도 장사를 하나보다.
불이 환했다.
순간 쟝 뽈 쌰르뜨르의 구토를 기억했다.
아..........참 얼마만인가?
장 뽈 쌰르뜨르. 보봐르 부인. 음유시인이었던 죠르쥬 무스타기. 등등
불현듯 안개낀 항구가 그리웠다.
어쩌면 난 여전히 이 도시의 매력에 푹 빠져있나보다.
산과 바다와 강이 어우러진 이 곳은 그렇게 약삭바르지도 않고 그렇게 무지하지도 않고
조금은 억세고 거칠어도 바다가 있는한 부산은 사내들의 도시였고 자갈치 아지매의 아름다운 고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