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2

아름다운 집짓기 15/ 미와 추

커피앤레인 2005. 12. 25. 00:39

 

 

오정민 여류화가가 자정미사에 다녀오겠다며 자신이 돌아올 때 까지 꼼작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한다.

성당은 크리스마스 이브엔 자정미사를 드린 다음 교우들이 뜰에 모여 떡이며 국이며 소주며 동동주를 마신다고 오늘 밤은 꼭 그곳에 가잖다.

아직까지 장례식이나 결혼식외에는 성당에 가 본 경험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가 너무 생소해 다소 놀라웠다.

간혹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떡국도 끓이고 떡을 나누어 먹는 것은 봤지만 술은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인줄만 알았는데 성당에서 그렇게 한다니 오늘 같은 날 천국에서는 뭘할까 ...........................하고 갑자기 궁금해졌다.

 

송제 이 상개 선생이 오후부터 한잔 했는지 오 여사와 함께 강나루에 들어서자 반색을 하며 자리를 권했다.

강나루는 내가 잘 가는 단골집인데 시인인 송제선생의 아내 목여사가 경영하는 조그마한 술집이다.

대개 오는 손님들이 거의 문화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언제나 가도 유가 없어서 쓸쓸하진 않는 곳이다.

그 곳에서는 자주 즉석 라이브 음악이 펼쳐지기 때문에 적어도 몇곡 정도는 항상 준비해둬야 전체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데 간혹  씨나리오 작가겸 영화감독인 김사겸 감독이 오는 날은 분위기가 조금은 더 씨끄러우면서도 흥이 대단하다.

김감독은 지난달 부산 국제 영화제 때 아내 몰래 숨겨두었던 비자금이 있었던지 오랜 만에 술을 한잔 사겠다고 호기를 부렸다.

술이 한잔 거나하면 의례껏 그는 자신이 곡을 썼다는 박꽃을 불러서 좌중을 즐겁게 하는데 그가 노래를 부르는 그 순간만은 그 누구도 잡음을 내어서는 않된다.

하지만 서울서 유 현목 영화감독이 내려오는 날 만은 그는 전혀 다른사람이 되었다.

아마도 영화계에서 유일하게 존경하는 그의 사부에 대한 예의 때문인것 같다.

김 감독이 취하는 날은 의례껏 미학에 대한 강의(?)가 한차례 지나가야 술자리가 원만하게 파하는데 그러나 건축에서 미와 추라는 개념은 때때로 모호할 때가 많다.

 

시골 같은데서 종종 부딪치는 문제이지만 동네 한 가운데 잘 지은 콘크리트 집을 보면 왠지 어색하고 뭔가 아름답다기 보다 오히려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아름다운 것은 반드시 반듯반듯하고 질서정연하고 새로운 것만은 결코 아닌 것 같다.

구부러졌으면 구부러진 그대로 옛 멋을 고스란히 간직한 체 고색창연한게 때로는 더 아름다우며 새로운 것이라 해도 그 나름대로 조형미와 소재와 질감과 색갈들이 조합하여 새롭게 농축된 어떤 아름다움과 세련미가 돋보일 때 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

때때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사진작가가 다 허물어진 헛간을 작품의 소재로 자주 삼는 것도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간만이 유독 늙은 것이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은 우리들의 삐둘어진 심성 때문인지 아니면 외모만 추구하는 세태의 병든 한 단면 때문인지.....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 꽃 보다 단풍이 더 아름답다는 했는데..............

하긴 묵은 장 맛이 더 구수한 건 분명한데도 사람들은 새 독에 담아논 장에 더 많은 관심이 가는건 어쩔수 없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