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2

아름다운 집 짓기 21/ 디자인은 선이다

커피앤레인 2006. 1. 5. 21:05

 

 

20여년 동안 디자인을 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디자인을 의뢰하기만 하면 하루밤새 좋은 작품이 그냥 쏱아지는 줄로 착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계약과 동시에 인테리어를 하거나 집을 지어달라고 압력을 가한다.

그러나 제 아무리 뛰어난 디자이너도 밤새 영감이 떠오르거나 좋은 작품이 구상되지는 않는다.

적어도 디자인을 할려면 작가가 충분히 자기 실력을 낼 수 있도록 시간을 주어야한다.

만에 하나 돈에 눈이 멀어 내일 당장 공사하겠습니다하면 그건 디자이너도 작업을 의뢰한 클라이언트도 망조가 들긴 마찬가지이다.

 

디자인(Design)이란 말은 원래 의장 설계 계획 의도 .....같은 뜻을 가진 말이다.

디자인의 원조는 아무래도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디자이너가 충분히 생각을 하지 않고 일부터 먼저 시작 한다면 그건 이미 실패가 예견된 작업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꼴이다.

 

어느 작가나 마찬가지이지만 스케치나 드로잉은 그냥 하는게 아니다.

음식이 손맛에서 나오듯이 작품도 작가의 손에서 창조된다.

수없이 반복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작가는 비로서 유치한 선을 지우고 뭉개고 버리는 작업을 통해 자기의 편견과 고집과 진부함도 함께 내동댕이 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에 미쳐서 값싼 작품을 만들어놓고 마치 대가인양 허영을 부리게 된다.

절제된 선 하나 하나는 그가 느꼈던 영감의 표현이며 형태 하나하나  미학적인 아름다움과 세련미가 서로 교차되어 비로소 한 작품이 완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아쉬운건 자신의 역량이 미치지 못하는 한계 앞에 디자이너는 또 고개를 숙여야할 때가 있다.

 

특히 상업공간을 디자인 할 때 작가는 생각보다 더 심각한 책임감을 요구받는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예술작품은 혼을 불어 넣어야하고 상업공간은 대충 아무렇게나 하여 빨리 오픈만 하면 되는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예술작품은 어쩌면 작가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이지만 상업공간은 작가와 거기에 드나드는 고객과 종사자들과의 싸움이다.

 

상업공간 디자인이 엉망이거나 진부하면 고객은 여지없이 그 작품을 쓰레기 통에 집어던지듯이 외면해 버리고 다시 찾아오길 거부한다.

설혹 작품이 좋을지라도 쓰는 사람이 불편하면 그 또한 별 값어치가 없다.

때문에 디자이너는 새로운 작업을 의뢰 받을 때마다 아무도 모르게 미지의 고객과 한참동안 눈 높이 싸움을 치열하게 전개해야한다.

만에 하나 분위기가 고객의 마음에 흡족하면 그건 디자이너의 승리이지만 분위기가 고객의 마음과 눈 높이 이상을  끌지 못하면 그건 그 집의 실패가 아니라 디자이너의 실패로 귀결된다.

 

문제는 게임이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데 또 다른 비극이 있다.

디자이너의 실패는 때때로 한 가정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는 절박함이 깔려있다.

한평생 모은 돈을 투자하여 제대로 꿈도 펴지 못하고 사업이 망한다면  그 아픔은 누가 책임 질 것인가......

디자이너의 입이 마르고 입술이 부르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하는 얘기이지만 디자인을 의뢰하는 사람들에게 제발 어떤 일을 벌이기 전에 오랜 시간을 갖고  구상을 하고 디자인을 할 수있도록 미리미리 계약을 하고 좋은 작품을 만들도록 충분히 시간을 달라는 것도 그런 이유때문이다.

그러나 희안하게도 우리 나라 사람들은 때때로 우리 말이 그렇게도 이해 하기  힘드는지 언제나 코 앞에 일이 벌여져야 헐레벌떡 찾아오는데 그런 심뽀는 도대체 무슨 심뽀일까?